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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유적들-2

알라스카김 2020. 2. 29. 13:35

 

 

 

  일본군이 거문도에  입도한 것은 청.일 전쟁 직후다.  일제시대에 세워진 신사는 주위 난간과 신전 기초석만 남은 채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오욕의 역사지만 교훈 삼아 여지껏 남겨둔 것일 게다.

 

  영국군 점령시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굴복시킨 영국은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라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미국은 '조선은 중국의 조공국이지 속국이 아니다. 엄연한 주권국가이므로 침략행위다'라는 외교부 성명만 낸 것이 고작이다. 그 미국이 한일합방을 꾀하는 일본의 만행을 막아달라는 고종의 애원에도 귀를 막고 수수방관만 했다.

 2017년 미국을 방문했던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속국이었다'란 말에 트럼프가 고개만 끄덕였다고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최근 대륙굴기,해양굴기를 외치며 세계적 대형(大兄)노릇을 하려는  중화부흥 운동은 중국인구의 20%에 불과한 한족(漢族)의 허황된 꿈일 것이다. 

 

 

  

 

 

 

 

  해밀턴 항(Port of Hamilton)은  1845년 사마랑호를  타고 온 에드워드 벌처 함장이 지은 이름이다. 1885년 3척의 배에 200여 명이었던 군인들이 시간이 지나 군함 10척에 800여 명에 이르러 이곳 초등학교 자리에 병영을 두고,해안 곳곳에 포대와 수뢰 등을 설치하고 서도를 향해 제방도 쌓았다고 했다.

 

 영국군은 부대나  기지건설 공사에 현지 주민들을 동원했는데 후한 임금을 지불하여 섬 사람들이 즐겨 그 일을 도맡았다고 한다.

 영국군이 철수한 후 조정에서 섬 주민들을 위로하려 온 관리가 ' 고생이 참 많았다' 고 하자 '그 동안 영국 군인들 덕분에 저희는  행복했다고'고  답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조선이 이 때 영국을 적극적인 후원자로 맞이했다면 한국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라고  묻는 사람(이동인)마저  등장했다.

 

 

 

 

 

 

 

 

 

 

 

 

 

 10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영국군 묘지라니  놀랍다. 모두 9기였는데 6기는 본국으로 이장되었고 지금은 십자가 묘석을 포함 3기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들이 마구 쓰러뜨린 묘석을, 해방직후 섬 주민들이 복원하고 길을 조성하여 기념공간으로 지금껏 관리해오고 있다. 얼마나 일본인들이 미웠으면 영국 군인들을 추모했으랴.

 

 -1886년 3월 알바트로스호 수병 두 명이 우연한 폭발사고로 죽다. William J. Murray 와 17세 소년 Charles   Dale가 그들이다.

- 1903년 10월 3일, 알비몰호 승무원 Alex Wood , 여기 잠들다.

 

  섬 주민들의 정성에 감동한 영국인들은 주한 영국대사관을 통해 거문도 중학교에 장학금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2004년 12월에 방한했던 엘리자베스 여왕도 거문도 방문을 간절히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한다.

 

  영국과 달리,지나간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외면하는 일본의 극우들을 향해, 나는 새삼 간교하고 탐욕스런 못된  섬 근성이라고  꾸짖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