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가을은 남자의 계절

알라스카김 2008. 9. 24. 13:33

꿈 같은 나날이 흐르고 있다. 삽상한 공기에 몸을 맡기면 살아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아침으로 공기가 서늘하여 이불깃을 끌어 당길 때마다 곧 겨울이 오리란 예감이 들어 올 한 해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구나 ,내 인생의 달력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았구나,그런 쓸쓸한 생각이 든다.아무러나 가을 햇살은 눈부시고 청자빛 하늘은 더욱 높다.식당에 앉으면 식욕이 동해 입에 대는 것마다 또한 감미롭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좀 더 젊은 시절까지만 해도 가을만 되면 센티멘탈에 빠져 해가 저물면 왠지 모르게 바지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거리를 배회하고 싶었고 아름다운 음악이 듣고 싶었고 아름다운 가곡을 흥얼거리거나 시라도 쓰고 싶은 마음에 늦은 밤까지 쉬이 잠들 수가 없었다. 가을을 탄다는 말이나,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는 것을 흔히 무슨 음양의 이치로 풀이하는 버릇이 있는데,나는 그것을 단지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푼다. 남자의 고환은 정충을 생산하고 저장하는 장소인데 정충이 썩지 않으라고 몸밖에 돌출되어 있다. 그래서 대기온도가 높으면 늘어지고 차가우면 몸속으로 움츠러 든다. 대기온도가 서늘하여 아랫도리가 마치 과일과 야채를 보관하는 저온창고 비슷한 이 시기가 남자로선 생리적으로 몸의 상태가 제일 충만해지는 계절이라 자연 여성적인 것에 이끌리는 감성이 절로 유발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니 차츰 내부에서 들끓는 용솟음은 사라지고 자주 서글픈 생각이 든다.지나간 세월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찬란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연민이 앞서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감상도 이제 잠시일 뿐,더 늙기 전에 인생의 열매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아이들의 출가를 도우고 남은 여생의 초막 한 칸이라도 장만하려면 이제라도 열심히 자중하며 살아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이 들어 센티멘탈한 낭만을 멀찌감치 밀어버리는 것이다.

바야흐로 나도 인생의 가을에 접어들었다. 미당의 시처럼 아름다운 것은 결국 슬프고 슬픈 것이다.

                                                                      2006.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