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집에서는
지금 우리집에서는 꽃들이 마당을 점령하고선 용천(湧天)을 떨고 있다.
이웃집과 담벼락 삼아 만든 우리집 화단에 심어진 나무란 것은 개동백,흑장미,무궁화,감나무,수국,연산홍,넝쿨장미 등이다. 그 발옆으로 봄여름에 피고진 이름모를 야생화들과 할미꽃,함박꽃과 꽈리꽃,봉숭화 ,등등의 뿌리가 숨을 쉬고 있다.봄 여름 무성했던 그 꽃나무들의 터전을 비켜 들국화 무리들이 볕을 찾아 죄 마당가운데로 줄기를 뻗어 조심조심 자라더니 어느새 모조리 꽃봉우리를 터뜨렸다.그러자 작은 벌들이 찾아와 또한 시끌벅쩍 잔치를 벌이고 있다.그들과 동무하여 금잔화들도 한 무리 떼를 지어 눈부신 꽃을 피우고 있고 또 그 속이거나 가장자리쯤에 드문드문 짙은 분홍색의 분꽃이 여지껏 질긴 목숨을 입에 물고 있다.
개동백을 타고 자라던 나팔꽃이 10월 중에 죄 스러졌고 빨랫줄과 전깃줄을 타고 제 세상인양 마당가의 하늘을 뒤덮었던 수세미줄을 거둔게 불과 며칠 전이었는데,먼 길을 지쳐온 나그네인 양 천연덕스럽게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이 꽃들의 문안을 나는 주인된 도리로서 아침저녁 흠향하고 있다.잎이 두툼하고 공처럼 둥글게 생긴 대국(大菊)은 그 향이 천리까지 은은하다.그러나 들국화의 향은 독하고 쓰다.
우리집 국화꽃은 본래 순백색의 작고 동그란 것들이 원주민이었는데 화분에 담아 기른 잡종들이 나도 모른 사이에 서로 교접을 하였는지 원주민 옆으로 온통 노란 색깔과,연분홍색이 가미된 노란색깔과,옅은 베이지색과 ,온통 연분홍색깔의 혼혈이민들이 섞여 내 눈을 현란하게 만들고 있다.그 꽃무덤 사이로 얼륙무늬 암코양이 후랑코가 어슬렁거리며 산보를 하고 있다.올해로 만 아홉살인 후랑코는 자식을 낳지 못한다.그러나 그녀는 결코 외로움을 타는 법이 없다.그녀의 똥과 오줌이 지난 여름 뒤뜰에 옮겨심은 더덕뿌리를 질식시켜 죽였어도 그녀를 나는 한번도 나무라지 않았다.오히려 꽃나무들을 희롱하며 노니는 그 후랑코를 조선시대 한량처럼 묵을 쳐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충동이 늘 일곤 하였다.
아- 벗들이여! 언제 한번 나의 누옥(褸屋)에 건너와 차 한 잔 마시고 가시게나.저 꽃들이 마저 떠나기 전에 ...
2005.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