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개하고 싸우는 남자

알라스카김 2008. 10. 17. 13:37

" 나는 175 다시 5번지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이 동네 오니 개새끼 짖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네요. "

차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늦은 밤. 동대신동 서여고 뒤 편,새로 이사간 양옥집 이 층 마당에 서서 개가 울부짖는 주택가를 굽어보며 내가 일갈한 소리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당리동에 살 때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군요. 사하구청 뒤에서 서여중으로 향하는 산복도로 중간쯤에서 산쪽을 향해 10여 계단을 올라서면 대문이 마주치는 집이 있고 그 집에 진도개보다 덩치가 더 큰 털색이 하얀  숫놈 잡종견 한 마리가 살고 있었지요. 우리 집은 그 집 앞을 지나 좌측으로 약 20미터의 좁은 골목길을 더 걸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어느 늦은 밤이었습니다. 술 냄새를 입에 잔뜩 물고 계단을 올라서는데 그 개가 커렁커렁 온 동네가 떠나가라 짖는다 말입니다. 사실 그 전엔 그 개가 그 집에 사는 줄도 몰랐지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당한 일이어서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고 술이 깸과 동시에 나는 개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뭡니까.

  "이 개xx, 주민등록증도 없는 놈이 어데서 동네방네 짖고 지랄이야. 야- 임마, 우리 집에 가는 길인데 니가 왜 짖느냐고. 니한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사람행색이 후줄근하니 니 눈에 내가 개만도 못해 보이냐, 아-앙?"

  순간 좁은 골목길에는 개 짖는 소리가 뇌성치듯 했고 개에게 앙조가리는 나의 쉰 목소리도 떵떵거리며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개와 옥신각신하고 있자니 골목길 안쪽에서 장성한 아들과 아내가 뛰쳐나왔습니다.

  “당신 오늘 보신탕 먹었소, 와 이라요?”

그때,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후다닥 켜졌던 골목 아랫집 형광등이 바삐 꺼지면서 킥킥거리던 웃음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정말 개가 개를 알아보는가 싶어서 다음날 보신탕을 먹고 조금 이른 시각에 집에 들어갔지요. 그러나 마침 그 날에는 개가 어디 멀리 외출이라도 했는지 골목길은 아주 조용하고 캄캄했습니다.

  개하고의 충돌은 주로 내가 인사불성으로 취해 집에 들어오는 야심한 밤에 일어났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서너 가지 술에 짬뽕이 된 데다 대 여섯 시간 동안 입에 쑤셔 넣었던 먹거리들의 찌거기가 입안에 가득 잠복해 있었을 것이므로 맨 정신인 개에게는 그 냄새가 얼마나 역겨웠겠습니까. 인사불성인 내가 후각박사인 그에게 저지른 나의 결례를 생각할 리는 만무했지요. 오로지 개 소리에 내가 반응한 것은 개에게 욕을 듣는 듯한 모욕감과 더불어 그 좁은 골목에서 앞뒤 안 가리고 제 기분대로 짖어대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의 몰염치였습니다. 어떤 날은 팬티차림의 개주인이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소리와 그의 아내가 그의 발목을 낚아채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 이 골목에서 술만 먹었다카몬 떠드는 사람이 당신인데 저 개보고 만- 다꼬 맨날 뭐라캐샀소. 내사 마 부끄러버 못 살겠네.”

  밤이면 밤마다 남의 집 계단입구에 함부로 차를 주차해 놓아 몸을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짜증스러웠던 나는 술만 조금 취했다 하면 길가에 선 채 그 무람한 차주들을 향해 육두문자를 휘날리는 것이 통과의례였습니다. 그 잡종견이 우리 동네로 오기 전에는 나도 내 기분대로 짖어대는 개였다는 것을 아내가 상기시킨 말이었지요. 바람벽너머로 그 소리를 들은 팬티차림의 개 주인은 아마 그 순간 통쾌한 나머지 가슴을 쓸어내렸을 겁니다.

  “야-이 개XX 들아. 내가 돈이 없어서 차를 안사는 줄 아나. 주차장이 없어서 그란다. 이 치사하고 더러운 놈들아. 주차료도 내기 아까운 놈들이 다이너스티는 지랄한다고  타고 다니노,으-잉?”

  그 잡종견이 내게 꼬리를 내리고 항복한 것은-아니 그 보다는 서로  짖는 역할에 대해  연대감을 표시한 것은 ,또한 무람한 불법주차 차주들을 향해 내가 휘날리는 뜨거운 욕설을 경청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그와 다섯 번 짼가 심야의 설전을 벌인 뒤였습니다. 

 

 

*사족-남을,함께 사는 이웃을 배려하지 못하는 저급한 문화를 나는 저주합니다. 산이나 바다를 갈 때마다 나는 허공을 향해 총을 쏘고 싶은 적의를 느낍니다. 등산객이나 행락객들이 아무데나 버리고 간 오물과 쓰레기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는 아직 총체적으로 저급한 문화가 범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詩여 침을 뱉어라. 그래서 나는 김 수영 시인의 이 귀절을  특히 좋아합니다.

 

 

20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