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용돈
지난 주말(10.5.15), 서울에 있는, 작은 아들로부터 내가 직장일로 거주하는 전라도 나주 인근의 곡성에 무슨 행사가 있어 오므로 일이 끝나면 잠시 들르겠다는 전갈이 왔다. 어버이날에 뵙지 못했으니 아버지의 얼굴이라도 보고 가겠다는 뜻으로 알고 처음에는 갸륵한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멀고 또 대중교통으로 이곳에 오려면 여간 불편하니 일이 끝나는대로 그냥 올라가라고 말했다. 근데 차가 있어 그런 염려는 내려놓으시라고 아들이 말했다. 곡성에서 하는 행사란 곡성군 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연이었고 아들의 역할은 그 공연의 사회자였다. 이놈의 자슥,취직시험에나 열중하라고 했더니 사회는 뭔 사회? 순간 혈압이 불끈 치솟았으나 한편으론 대견스럽기도 해 입에서 오물거리던 잔소리를 그냥 삼켰다. 아무것에나 죄 관심을 갖고 이것 저것 들었다 놓았다 집적거리는 짓은 꼭 제 애비를 닮은 게야.
“ 차라니,웬 차?”
군대를 제대한 후 어느 날 갑자기 다니던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사법고시 시험을 준비한다며 2년 가까운 세월을 허송했던 아들이었다. 복학할 때 내가 부담한 한 학기 등록금을 제외하면 학비와 자취생활과 용돈을 모두 제 손으로 해결했던, 제법 옹골찬 아들이었다. 그러나 세상만사 뜻만 세운다고 모두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법. 사시 1차 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진 아들에게 나는 자기 능력에 맞는 꿈을 꾸라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 그 후 아들은 코스모스 졸업 마지막 학기를 위해 복학을 하랴,생활비를 벌랴 다시 동분서주하였다. 그러므로 그런 아들에게 차가 있다는 것이 뜻밖일 수밖에.
“여자 친구가 운전하는 차예요”
“여자 친구? 그...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한다던? ”
아들은 81년생, 우리 나이로 서른이다. 나이 서른인 총각의 여자친구라면 곧 미래의 배우자가 아닌가. 여자친구를 데리고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러 온다면 며느리감으로 면접을 봐 달라는 뜻이렸다? 갑자기 머리에 솜털구름이 솟아나며 그 옛날 내가 선을 보러 갈 때처럼 가슴이 설레기까지 했다.
“아버님,저희들 지금 무지 배고파요. 맛있는 것 사주세요.”
미스 염. 아들보다 한 살 아래인 아가씨는 무척이나 명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회의 장로이며 어머니는 권사이자 초등학교의 교감이라고 했다. 아가씨는 공연기획사의 매니저였고 아들은 최근 들어 순전히 아가씨 빽으로 사회자로 불려 다니는 꼴이었다.
“아버님, 오빠는 우리 팀에서 언제나 인기짱이에요. 오늘도 여고생들이 오빠사인을 받으려고 공연장 밖에서 줄을 섰더라니깐요.”
여자 덕에 먹고 사는 자를 제일 경멸하는 나는 재치있는 미스 염에게 짜장 그 마음까지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아들 덕분에 모처럼 유쾌한 식사를 한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헤어질 순간이 되자 아들이 불쑥 내게 흰 봉투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아버지,이거 용돈하세요.”
봉투는 이미 내 손에 쥐어져 있었으므로 엉겁결에 나는 애매한 기분에 사로잡혀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아들이 탄 차는 꽁무니를 빼고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201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