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들에게 쓰는 편지

알라스카김 2015. 4. 8. 15:38

 

 

아들에게 쓰는 편지

 

 

 

- 오른쪽 무릎 위 대퇴골절의 여파가 나의 생활리듬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로 출퇴근하는 반나절이 피곤하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대부분 소파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한심하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가 이룬 것이 있다면 신구약 성경 일독이 유일하다.

이 나이에 그래도 불치병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2주일마다 꼬박꼬박 병원에 들러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퇴원한 지 두 달이 지났건만 사진을 본 의사는 깁스를 풀어줄 생각이 없다.

뼈가 아무는 속도가 느린 것은 잘 잡히지 않는 당뇨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마음과 생각을 늦추자. 그렇게 애써 자중자애하다가도 산과 들에 보따리를 푼 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울컥 짜증이 솟구친다.

 

- 얼이 네가 목사고시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만감이 교차했다. 어렵고 힘들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지나고 보니 다 하나님 은혜로구나. 너에겐 요셉처럼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보호하며 이끌어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이 함께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신학으로 진로를 바꾼 이후로 네가 걸어간 행로를 살펴볼 때 혈육으로서 아버지가 도운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지 싶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오늘의 네가 있는 것은, 사무엘을 생산한 한나의 경우처럼, 내 손자 중에 목자 한 명 세워주소서라고 애원했던 할머니의 기도 덕이라고 믿는다.(이 얘기의 뿌리는 생전에 할머니와 이웃하며 하단교회에서 기도생활을 함께 한 너의 처 할머니로부터 비롯된다.)

 

- 한가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지나간 생의 편린들이 자주 머리에 떠올라 마귀처럼 나를 괴롭힌다. 젊은 날의 어리석은 행적들과 그로 인한 실패자의 삶을 뒤돌아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문임에 틀림없다. 모든 것을 다 내 탓이라 치부하며 남은 생을 참회하며 살겠노라 다짐하지만 악한 본성의 바탕을 송두리째 지울 수가 없다내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의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노라-롬7:22-23) 

 

 어두운 기억의 그림자들이 몰려올 때마다 그 생의 궤적들을 복기하기엔 시간이 모자란다. 황혼의 지평선 같이 여분의 시간은 짧다. 아무래도 나의 구원은 자칫 미완성으로 끝날 듯싶다.

하루하루 화장지처럼 허비되는 나의 시간들. 그러나 여전히 게으름이 아침의 햇살을 밀어낸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다음 성경구절에 밑줄을 긋는다.

(내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24;33-34).

 

 또한 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간절함을 구한다. 바울 사도는 구원의 믿음은 지혜나 무슨 지식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나는 간절함으로 부르짖기를 원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 리라 -33:3)

 

- 얼아, 곧 너도 40대가 될 나이구나. 40대에 접어들면 누구나 목회담임에 목표를 맞추게 마련이지. 아버지는 새삼 남은 생에 대한 애착으로 번뇌하지만 너는 항차 자신의 장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구나. 네게 도움이 될까하여 최근에 읽었던 책갈피를 더듬어 다음과 같이 몇 자 옮겨본다. 왜 옛 사람들이 한 권의 경()을 수백 수천 번 독파했던가 그 이치를 따진다면 그들은 오로지 독서에 의존하여 문리(文理)를 터득하려 했던 것이리라. 문리란 곧 세상이치를 깨닫고 판단하는 능력을 말함이다.

 

 

 다산은 유배시절 그의 제자들에게 학습순서상 선경후사(先經後史)의 단계를 강조했다. 경전을 먼저 배워 중심을 세운 뒤에 역사를 익혀 적용을 배우라는 것이다. 이인영에게 주는 말에 사서(四書)로 나의 몸을 세우고 육경으로 나의 지식을 넓힌 뒤, 여러 가지 역사서로 고금의 변천에 달통하는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수기(修己)가 먼저고 치인(治人)은 그 다음인 것이다. 다산과 초의(草依)는 사제지간이다. 다산이 48, 초의가 24세였다. 다산이 초의에게 베푼 가르침과 당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혜()와 근()과 적() 세 가지를 갖추어야만 성취함이 있다. 지혜롭지 않으면 굳센 것을 뚫지 못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힘을 쌓을 수 없다. 고요하지 않으면 온전히 정밀하지 못한다. 이 세 가지가 학문을 하는 요체다. 

 이제 내가 네게 논어를 가르쳐주겠다. 너는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되, 마치 임금의 엄한 분부를 받들 듯 날을 아껴 급박하게 독책(督責)하도록 해라. 마치 장수는 뒤편에 있고, 깃발은 앞에서 내몰아 황급한 것처럼 해야 한다. 호랑이나 이무기가 핍박하는 듯이 해서 한 순간도 감히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다산(정약용)의 재발견-정민 지음.

 

  너의 시대에 교회 목회자는 과연 어떤 역할이어야 하는지, 그 자질과 덕목은 또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 일찍 결혼한 탓에 자녀교육과 가정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한 너의 처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크다. 아버지는 네가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보다 많은 수련을 경험하길 간절히 바란다. 목사 안수식에 하나님의 큰 은혜와 감동이 함께 하길 두 손 모아 빈다.

 

 

 

201549

나주에서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