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들입니다.

알라스카김 2015. 8. 6. 13:11

 

아버지!

 

말 그대로 살인적인 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대프리카라는 표현으로 대구의 더위를 표현하곤 하는데, 사실 작년까진 대프리카의 더위를 실감하진 못했습니다. 작년 여름엔 대구여름도 소문처럼 덥지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늦게 깨달았지만 작년의 대구의 여름은 대구사람들도 의아할 정도로 선선한 날씨였다고 합니다. 나주의 더위도 대구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더우리라 생각됩니다. 살인적인 더위 가운데 건강을 챙기시기 바랍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동기들끼리 만나게 되면 만남의 자리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빠지지 않는 대화의 주제가 있습니다. 그 대화의 주제는 앞으로 우리는 담임목사가 될 수 있을까?’란 고민입니다. 그렇게 가볍지 않은 주제임에도 공통된 관심사여서 그런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합니다. 또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대화의 마지막은 찝찝한 기분을 가지고 마칠 때가 태반입니다.

 

사실 저 또한 담임목사가 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상황도 여의치 않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어둡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담임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힘 있는 장로들한테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기분 나쁜 말들도 들립니다. 하지만 저는 차라리 목사를 그만두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치사한 목사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충분히 치사한 목사들은 많기 때문에 저까지 보탤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항상 지금 제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에 대해서 고민하기 보다는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제가 감당할 수 있을만한 크기의 사역지를 주시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합니다. 어떤 동기들은 남자가 큰 꿈을 가지고 기도해야 큰 목회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동기들도 있지만, 어쩌면 큰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을 목양하고 싶다는 꿈도 어찌 보면 바른 목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지극힌 인간적인 명예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게 주어진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다보면 제게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사역지를 하나님이 허락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떨치지 못할 고민이 있다면, 부모님에게 아들 역할을 못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가족에게 떳떳한 가장의 역할도 하지 못할까? 그런 걱정들도 계속해서 따라옵니다. 요즘 욕을 먹는 목사들이 참 많은데, 이런 욕먹는 목사들도 처음에는 이런 소박한 고민들로부터 시험이 든 것은 아닐까? 란 생각도 합니다.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선임부목사로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설교를 할 기회들이 많이 생깁니다. 특히 담임목사님이 부재중일때는 잠시나마 담임목사님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목사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설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목회를 하면서 좋은 설교를 하기에 정말로 힘들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는 목사에게 멀티플레이어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교역자들이 많은 규모가 있는 교회라면 그래도 상황이 조금은 낫겠지만, 한국교회의 80이상의 교회들은 중소형 교회입니다. 한 명의 교역자가 일주일에 새벽기도 6, 수요, 금요, 주일 오전, 주일 오후, 심지어 주일학교까지 설교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또 거기다가 주중에 수시로 성도들 집으로 병원으로 심방도 가야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작은 행정적인 일부터 허드렛일들도 목사들에게 주어지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따로 시간을 내어서 개인적인 기도의 시간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들 가운데 책도 읽어야 하고, 성경도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 1-2년도 아니라 10년 가까이 계속된다면 아무리 좋은 목사라도, 설교의 내용과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담임목사가 되었을 때 성도들이 자신의 설교에 대해서 안 좋은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목사도 점점 다른 목사들의 멋진 설교를 베껴야 겠다는 유혹이 들진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 교회의 목사님의 설교는 이런 문제라기보다는 목사님의 설교관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런 목사님들은 설교에는 사람의 생각과 말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입니다. 설교에 있어서 대단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시는 분들입니다. 마치 요리에는 일체의 화학조미료가 가미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이에 반해 요즘 잘나간다는 목사님들 대부분이 성경말씀은 5분정도 말하고 전부 자기 얘기와 자기 생각만을 말하는 목사님들입니다. 웃긴 얘기, 슬픈 얘기, 감동적이 얘기들만 풀어놓다가 회중이 눈물이라도 지으면 은혜로운 설교였다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지난 가을에 서울지역에서 유명한 목사님 한분이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이런 설교를 한 시간이 넘게 듣는 일이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만을 이야기하는 목사님과 자기 생각만을 이야기하는 목사님 둘 다 양극단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 기준에는 둘 다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말씀처럼 성경을 떠나지 않으면서 성경의 이야기를 회중들이 알기 쉽게 그리고 우리의 처지에 맞게 적절히 적용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매주일 예배때 이런 점들 때문에 힘들어 하시겠지만, 그래도 제 생각에 아버지가 섬기시는 교회의 목사님은 설교와 목회에 대해서 굉장히 주관이 뚜렷하시고 강직한 목사님으로 생각되어집니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고 세상과 적당히 뒤섞여서 성도들이 먹기 좋은 달달한 음식들만 내어놓는 그런 목사님과 같지 않아서 한편으론 조금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이만 글을 마치려 합니다. 건강하시고 다친 다리 재활치료 잘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좋은 그리고 바른 목사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015. 8. 6

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