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약산도 여행-4(가사리 와 꼬시래기)

알라스카김 2016. 5. 11. 15:43







해가 떨어지기 전에 약산도 구경을 마치고 싶었다.

특히 오래 전에  면에서 읍으로 승격한 금일도를 낼 한 번 둘러봐야겠다는 선생님의 염원도 있고 해서

나는 두 분을 모시고 가사리 해수욕장을 향해 다시 차를 몰았다.


 가는 길 왼편, 양지바른 유자밭 근처를 가리키며 장차 문학관을 저기에 세웠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사촌형이 꺼냈다. 선생님이 '그라몬 좋제'라며 장구를 치신다.가사리에 이르러 일주도로에서  내리막길로 해변에 닿기까지  새로 생긴 팬션과 음식점들이 10개는 넘어 보였다.


  -옛날 가사리가 아니랑께. 시방은 일주도로가 났응께 그렇제 옛날 우리 핵교 다닐 때는 오솔길만 있었제.

   그라고 모래사장은 발이 무릎꺼정 빠지는 모래언덕이었지라. 집도 꼴랑 세 챈가 두 챈가 있었고...

- 지금은 모래가 다 없어졌어. 다리가 놓이고 관광객들이 몰리자 방파제를 짓고 물항장을 맨들고 해샀더만

   모래가 죄 없어져 삐맀어. 젠장, 그 뿐인가?  온 섬이 쓰레기 투기장이 되고 말았어 ,시방.


매립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지척에 금일도가 보였다. 만을 품은 낮은 언덕의 진초록빛 숲은 후박나무 군락지였다. 만의 왼쪽 끝을 가리키며 선생님은 육이오 동란 때 그 곳 절벽이 좌익들의 처형장이었다고 알려주신다.


 다리를 푼 뒤 일행은 다시 일주도로에 올라 길 위에 새로 지은 황토방 팬션으로 들어섰다.

주인 내외가 바로 점심때 차 병호씨 집으로 막걸리와 파전을 싸들고 온 사람들이었다. 

식당 안에 중늙은이 두 명이 앉았다가 사촌 형님을 보더니 번쩍 손을 들어 반긴다. 

 좁은 섬 동네라 10리 너머 살아도 원주민들은 모두 사돈 아니면 팔촌이다.

선생님도 금방 분위기에 휩쓸려 야-자 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전주가 있다며 한 양반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젊었을 때 이장 일을 오래 한 사촌 형님이 넉살좋게 손사래를 치며 눌러 앉힌다.


-어디 갈라꼬? 이 시간에 무슨 일이 있다고?

- 바당 일이 좀 있어. 꼬시래기 걷다 만 게 있거등  


 꼬시래기..?   내겐 생경한 이름이었다.

 서부 경남에서는 망둑어를 꼬시래기라 부른다. '꼬시래기 제 살 뜯어 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 ㅎ ㅎ ㅎ ,꼬시래기를 보고 서방없는 여자라 하제. 살포시 건드리기만 해도 따라오거등.

 또 사촌 형님이 나선다. 바다 일을 하는 중 꼬시래기가 그물이나 어구에 잘 걸려든다고 해서 지어낸 우스개 소리다.


-  품삯도 안 되는디,씨잘 데 없이...

 근간에 웰빙식품으로 소문이 나  군에서 천해양식을 장려했다는데 값이 폭락하여 재미가 없다는 얘기였다.


 장흥.완도.해남 등지에서 '꼬시락'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어두운 홍색을 띤 홍조류의 하나다. 가느다란 실 모양의 수많은 가지가 산발한 머리와 같다. 형태가 다양하여 앞에 붙는 이름의 갈래도 여러가지다. 우무를 만들 때 우뭇가사리와 섞어 쓰기도 한다. 조간대의 모래밭 근처 돌에 붙어 서식하지만  돌에서 떨어진 몸통과 가지는 바닷속 어디나 떠돌아 다니는데 생장이 빨라 어떤 것은 길이가 5미터나 된다고 한다. 길이에 대해선 황토방 팬션 안주인의 증언을 따랐다.


먼저 앉았던 사람들이 술을 마다하자 술자리가 데면데면 흥이 식는다.


섬 일주를 하려면 당목항(堂木港)을 둘러봐야 했다. 금일도를 오가는 페리선이 하루 아홉 번 있다는 당목항의여객부두는 관광버스까지 와 서있다. 수산물 가공공장들이 들어선  당목항의 변모는 금일도의 생산력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면소재지인 장룡리 전경이 초라할 정도로 해안풍경이 번화했다.


-일제시대때 여게 동네를 가로질러 수로를 낼라고 했는디... 당목을 베어낼라꼬 톱을 들이대니깐 나무에서 피가 흘렀디야. 그래 공사가 취소됐다는 얘기여.


소설 '남도'의 어느 한 구절을 읽듯 , 당목항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선생님이 들려준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