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굴비
보리굴비
일전에 ‘보리굴비’와 ‘고추장 굴비’란 상품이름이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전남 영암군 법성포에 있는 수협인가 어촌계에선가 ‘보리굴비’란 기획상품으로 대량생산을 했다가 판매부진으로 재고가 처지자 궁리 끝에 어육을 해체하여 고추장에 버무린 일명 ‘고추장 굴비’를 만들어 판다는 홍보용 기사였다.
어제 오후, 나주에서 직원들을 대동하고 법성포를 찾았다. ‘보리굴비’의 정체와 상품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굴비의 재료인 조기가 서해연안에서 어부들의 표적이던 시절은 옛날 옛적 얘기가 되었고, 지금은 대부분 굴비의 재료는 중국산 부세로 대체되었다. 법성포의 진입로 부근에는 굴비가공공장들이 즐비했고 백수해안도로로 통하는 저자거리 좌우는 굴비전문 음식점과 상점으로 번성했다. 20년 전 보았던 지붕이 낮은 굴비염장소나 보부상 같은 점포는 이제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잘 정비되고 포장된 도로와 상점들의 외양이 너무 번듯하여 대도시 외곽의 어느 관광지에 온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일몰의 시각이라 가공공장들은 죄 문을 닫아버려 ‘보리굴비’의 제조공정을 엿볼 수는 없었다. '보리굴비'의 맛이나 보자며 인터넷을 검색하니 전문음식점은 영광에 있었다. 법성포에서 영광군 읍내쪽으로 차를 돌리자 군데군데 아파트들이 무성한 숲처럼 나타나고 주민회관이나 공설체육관들이 외지인들의 눈에 뽐내듯이 다가온다.
-아니, 영광군이 나주시보다 더 찬란하네. 저 아파트들은 무슨 연고로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나?
- 법성포 굴비재벌들이나 한빛원전 식구들이나 광주에서 몰려온 이주민들 때문일 겁니다. 여기 굴러다니는 승용차의 절반이 외제차랑께요.
이곳 사정에 밝은 젊은 직원이 운전중에 벌어진 나의 입을 닫아주었다.
우리는 ‘종가집’이란 간판을 건 음식점에 들어갔다. 굴비정식은 일인분에 12천원,보리굴비 녹차정식은 15천이라 불렀다. 굴비두름을 전시하여 팔기도 하는데 보리굴비가 열 마리 한 두름에 5만원 비싼 15만원이다.
주문을 받으러 온 종업원에게 보리굴비의 정체를 물으니 자기들은 공장에서 받아와 직판이나 요리로 내어놓기만 해 자세한 것은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옆자리에 않았던 개발담당 이사가 입을 열었다.
-소금에 침지한 부세를 겉보리에 묻어 건조시킨 것이 보리굴비인데 겉보리는 수분 흡수력이 좋아 어육의 수분만 흡수할 뿐 지방은 체내에 고스란히 남아 맛이 구수한 게 특징입니다. 요리를 할 땐 비틀어질 정도로 잘 건조된 굴비를 쌀뜨물에 몇 시간 담가 몸을 풀어준 다음 솥에 찌고, 그 다음 불에 살짝 구워냅니다.
- 그럼 쟁반에 얼음을 띄운 이 누르끼리한 물은 뭔가?
- 바로 녹차물입니다. 밥을 이 물에 말아 고기를 밥에 얹어 드셔 보시지요. 고기에서 나는 비 린내가 덜할 겁니다.
영광굴비와 달리 보리굴비는 원산지에 구애받지 않아 거침없이 중국산을 쓴다고 했다. 정작 종업원이 뜯어준 굴비살을 밥에 얹어 입에 넣으니 식감은 구수한 맛이 돌고 녹차의 향이 은근하여 입안이 깔끔하다. 과연 별미는 별미로되 왠지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커피집에 둘러앉아 우리는 한 시간 넘게 한국인의 정체성( 국가와 국민으로서의 근본)에 대한 토론을 가졌다. 범람하는 수입산과 점증하는 다국적 문화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