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쓴 편지(-19-02)
* 성경/ 마4:1-4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지난 5월15일 수요예배에서, 위의 구절을 인용하며 지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설교제목이 무척 궁금했다. 동영상을 열어본 바, 아버지는 김 목사의 설교내용에 감짝 놀라 마음속으로 ‘아멘!’을 연발하고 말았다.
통상 이 구절을 인용하는 목사들은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알파요 오메가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며 일점일획도 어긋남이 없는 성경을 만고의 진리로 받들고 애독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습게도 행함이 없는 그 믿음의 허실은 언제나 설교제목중 후순위였다.
사탄의 유혹을 능력이나 부나 명예 같은 세상의 가치거나 세속적 성공이나 욕망을 위한 저급한 삶의 기준에 빗대면서 믿는 자는 자신의 올바른 정체성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구한 예수를 닮아야 한다는 것이나, 덧붙여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자로다.’ 라는 말씀에 부합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은 매우 훌륭하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설교제목은 성경구절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며, 통속의 범위를 뛰어넘는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나는 최근 유투브를 이용하여 도올 김용옥의 ‘도마복음 강의‘를 듣고 있다. 아버지는 그의 기독교 문명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과 통찰에 근거한 비판적 발언들을 오래 전부터 경청해온 바인데, 최근 ‘도마복음’의 실체를 알아가면서 ‘예수’를 헬레니즘 시대를 살다간 위대한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라는 그의 추론에 심정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싶었다.
또한 현존 기독교의 성경은 구약(유대교)과 신약(예수교)으로 엮어진 구조적 모순이 있고, 이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설정하기 위한 신화적 자료의 역사적 필연성 때문이 아니었나 라는 그의 가설에도 쉽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왜냐면 이는 도올처럼 나도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기 때문이야.
21세기의 기독교는 2천년 가까이 지켜져 온 신화적 신학의 감옥을 과감히 부수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아버지가 이런 막말수준의 얘기를 김 목사에게 하는 이유는, 이제는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그 내용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어. 예를 들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네 맘속에 있다’는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 같은 것이다.
늘 깨어 있기를 기도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