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己亥年-秋夕
알라스카김
2019. 9. 19. 09:35
올 추석엔 부산으로 갔다.
울산에서 큰 아들 식구가,서울에선 신혼인 작은 아들 내외가 하루 전 날 내려와 함께 모였다.
명절이면 전주나 남원 등지의 타향에서 자식들과 합동하는 것이 이젠 버릇이 되고 말았다.
내가 사는 나주까지 아이들을 부르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 음식을 밖에서 사먹더라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나 아이들이나, 어차피 모두가 터향살이므로 명절에 고향을 찾는다는 민속을 고집할 이유도 사라졌다. 내가 집안의 맏이도 아니고 이젠 아이들도 결혼을 한 터라 차례상에 대한 예절도 진작 떨쳐버리고 말았다. 아내나 며느리들에겐 음식 만드는 일에서 해방되니 무엇보다 즐겁고 반가운 일이었다.
이산가족의 행사는,마리 얘약해둔 펜션에서 명절 하루 전에 모여 오손도손 밤늦도록 혈연주의에 심취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조식만 간편하게 해결하고 그 고장의 명소를 둘러본 뒤 당일로 헤어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좀은 쓸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광안리 해변과 인근한 주택가의 펜션에 짐을 풀고, 큰 아들의 안내로 일광으로 갔다.
넓은 바다를 보니 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마냥 바다만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귀여운 손녀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둘째 며느리의 예쁜 미소가 나의 눈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자식들을 바라보는 일이 그저 흐뭇하고 기뻐서 이게 바로 황혼의 아름다움이라 여겼다.
안타깝고 조금 쓸쓸한 것은 나중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