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나는, 쓸쓸하다

알라스카김 2019. 11. 6. 18:16



 40년 전 첫 직장인 교직에서 알게 된 K는  현재 캐나다 영주권자다. 그가 9월 하순 아내와 함깨 귀국했단다.

연로한 모친때문에 1년에 6개월 가량 한국에 디녀간다는 그도 지금은 연금생활자다. 다섯 명, 그 옛날 교직에서  만난 인연으로, 그 동안 간헐적으로 부부모임을 가졌지만 , 지금은 그 누구도  안부조차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옛 사람을 그리워 하는 자는 오직  K에게 전화를 건 나뿐이다 . 

 

 차를 타고 아파트 입구를 나서면  길가에 주차한 차들로 직선 주행하는 차들을 싑게 볼 수 없어 조심스럽다. 더구나 덩치 큰 화물차들이 버티고 선 경우엔, 경비실 아저씨에게 수신호를 부탁해야할 판이다. 차주는 아파트나 인근에 사는 주민들일 것이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도 공간이 없으면 통행로에 무시로 차를 댄다. 관리사무소를 통해 차주를 불러내면 이것도 못 비켜 가느냐고 나를 비웃는다. 아파트와 주택단지 사이로 2차선 도로가 생겨, 그 전에 우회하던 것을  생각하며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으나  웬걸?  좌우로 차들이 일렬 종대로 선 주차장이 되고 말았다.  나이 50 넘어 운전을 하게된 내가  30년 전 이미 예견했던 일이다.


 요즘 돌아가는 나랏일을 보면 왜 이다지도 개판이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정부나 국회나 사법부나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나의 짧은 식견으론 역사적으로 가장 발전이 안된 것이 정치가 아닌가 싶다. 물질문명에 비해 정신문화는 옛것을 우려먹고만  있다는 생각이 짙다. 상식도 모든게 제 편의대로다. 원인은 모두 인간의 집단적  이기심 때문이다. 국회를 들여다 보면 깡패집단을  방불케 한다. 국민이 안중에도 없는 오만과 상대방에 대한 분노. 일색이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교회를 가도, 정작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부흥(물질적)만 꿈꾸는 인간들뿐이다.

네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가르친 예수의 제자는 희귀하다. 사랑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외친 사도 바울같은 선생도  희귀하다. 무엇이든 잘되기만을 바라는 기도는 우상앞에 엎드려  손비비는 것과 다름없다. 세상을 바꿀 수 없는,사람을 바꿀 수 없는 종교는 자기 만족이나 도취를 일삼는 사이비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쓰레기일뿐이라는 말은 그래서 늘 공허하다.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이끄는 반정부 집회가 바로 그것 아니냐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당장 목사직을 그만 두고  정치판으로 나가라 하라.  그들이  이사야같은 선지자라면 교회안에서 오직 설교로 외쳐야 한다. 예수는 결코  혁명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이렇듯  나이가 들수록 매사 대범하지 못하고 짜증만 솟구친다. 그래서 요즘은 아내와 말다툼도 잦다. 경미한 조울증이라고 혼자 예단한다. 하루 하루 맨정신으로  산다는 것이 우울하고 쓸쓸하다.


 어느새 가을이 깊어간다.

가까운 날, 귀가 넓은 벗을 청해 여행이라도 떠나야겠다. 

달 뜨는 밤, 그와 함께 밤새 술잔이라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