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시간- 아들에게 쓰는 편지 (20. 09)
김 한얼 목사에게,
지난 8월 19일 ‘모두에게 필요한 광야’(신명기 8장 1-10)란 설교 동영상을 보고 느낀 소회를 몇 자 적어보려 한다.
광야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관점을 고난을 통해 우리가 훈련되며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으로 설명하여 우선 공감이 갔다.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광야의 시간이 닥칠 때 부르짖는 기도의 제목도 이 고난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고 애원하기 보다는, 광야의 시간을 허락하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살피며
그 고난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간구여야 한다는 것을 설파한 점에 감동하여 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사족이지만, 설교 원고도 단정했고 주제를 향한 논리도, 호흡도 일정하여 안심이 되더구나.
다만 아쉬운 점은, 불의한 이익을 쫓는 세상 사람들의 내로남불 식 현상을 ‘세상의 것을 놓지 않으려는 인간의 이기심’이라며 단순화 한 것이다.
욕심 같아선 광야의 시간이란 은유를 지금의 사회적 정치적 현상에 빗대어 예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꾸짖듯 성경적으로 용기 있게 비판했으면 했다.
잘 모르기 해도, 아버지는 고 옥한음 목사님의 설교가 이런 종류의 전범이었다고 생각해.
‘목사가 정치에 관해 왈가왈부해선 안 된다’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더라만, 그들은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라’란 예수의 가르침을 까먹은 바보들이 아닐까 싶어.
오늘날 정치만큼 우리의 삶을 크게 지배하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정치에 대한, 정치인의 옳고 그름에 대한 정직한 비판은 여전히 교회의 사회적, 미래적 순기능이라고 생각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내 백성이 천하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애굽기 33;16)라는 기사도 아버지는 모세의 정치적인 표현이라고 봐.
최근 아버지는, 코로나 19의 재 확산으로 바깥출입을 거의 못할 지경에 이르러 심신이 많이 위축된 터에, 뉴스를 통해 연일 쏟아지는 추미애 장관의 몰염치한 처신이나 여당의 내 편들기 식의 망언에 울화통이 터져 친구가 소개한 나훈아의 ‘테스 형’이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 모두 지금 광야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는가, 서로 자중자애하자 라는 글을 일기에 남겼다.
추석명절엔 서로 오가지 말자.
김 목사에겐 앞으로 더욱 많은 광야의 시간이 닥칠 것이다.
나이 80에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해낸 모세처럼, 하나님이 귀히 쓰실 그 날을 위해 늘 겸손하며 강건해라.
2020.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