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묘

알라스카김 2021. 4. 23. 16:18

 

 전남 나주시 동강면의 느러지 마을이다. 영산강의 곡강이 한반도 지형을 만든 영산강 8경중 2경으로 영산강의 숨결이 가장 도드라진  풍경이다. 저 느러지에 있는 최부의 묘(무안군 몽탄면 이산리)를 찾아가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었다.  수국이 만발하는 5월에 느러지 전망대를 찾아보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랬다.  

 

 

 

1454년 동강면 인동리(전남 나주 곡강면 성지촌)에서 태어나 성종 19년(1489년)에 저 유명한 표해록(漂解錄)을 남긴 최부는 , 정약용 다음으로 내가 존경하는 조선선비의 표상이다. 표해록에 남긴 그의 주옥같은 문장과 언행에서 지행합일의 기개와 선비정신에 압도된 나머지 나는 그를 평생 정신적 스승으로 떠받들기로 맹세했다.  그래서 올해 구정 (2021.02.12) 아침 한복을 입고 스승을 만나러 이곳에 온 것이다.

 

 

 

 

  최부 선생의 본관은 耽津 이다. 처가인 해남에 묻혔던 선생을 1947년 후손들이 그의 아버지가 묻힌 이곳 몽탄면 이산리로 이장하여 두 부자의 묘가 지금에 이르렀다. 

 선생은 김종직의 제자로 연산군 때 무오사화(1498)에 연루되어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되었다가 , 갑자사화(1507) 때 처형당했다.

 그는 1487년 추쇄경차관으로 제주도로 파견되었다가 이듬해 윤정월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나주로 향하던 중  추자도 부근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열흘 만에 중국 절강성 땅에 표착한 후 6개월만에 고국으로 귀환한 행장을 그려 성종에게 올린 것이 표해록이고, 그의 나이 34세 때였다.  이 기록은 근세이후, 17세기 시대에 작성된 '하멜 표류기'(1653년 제주도 표착. 1666년 일본으로 탈출)와 맞먹는 세계적인 기록물로 회자된 글이었다. 

 

  마침 바다에서의 표류사고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쓰다가 선생의 기를 받으려  난생처음 이곳 그의 묘를 찾았다. 나도 이제 나주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