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재의 겨울, 애마부인.
신축년의 세밑(21.12.23). 잘 삭힌 홍어 한판을 둘러메고 소설 몇 권을 챙겨 보성의 어산재를 찾았다.
나의 신작 '아버지의 바다' 출간기념 파티를 발문을 써주신 정형남 선생님과 함께 하기 위함이었다.
내친 김에 작가 후기에 언급한 인근의 아우들(형진,주현)도 청했다.
낮부터 달군 구들장이 펄펄 끓어 선생님은 런닝셔츠 차림으로 신작 증정본을 받는다.
며칠 전 술병으로 위가 뒤틀려 병원을 찾았다는, 샘이 그 좋아하던 막걸리 청주마저 조심조심 샐금거리자, 형진 아우는 중국의 詩聖 두보가 즐겨마셨다는 고량주를 뚜벅 내게 디밀었다. 마당 뜰에서 사랑채 땔감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주현 아우가 빠져 분위기가 방바닥처럼 쉬 달아오르지 않는다. 노느니 염불한다고,내가 대선정국에 대해 슬며시 여론조사를 했다.
"에이, Y 글마는 틀려묵었어!" 샘이 손을 내저으며 대뜸 찍자를 부렸다.
때마침 아침 일찍 목욕탕을 다녀온 아내의 얘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전라도 사람들 참 이상합디다. 여자들도 모두 Y는 몹쓸 놈이라며 찍어주면 큰 일 난다고 합디다."
벌거벗은 아낙들이 합창을 하던 욕탕의 풍경이 머릿속에 휘돌다가, 문득 영화 애마부인 여배우가 생각났다.
"그라몬 영화배우 김부선이 하고 일년 이상 붙어먹은 L은 꽨찮은 사람입니꺼?"
"그기야, 나가 안봤응께 모르것고..."
샘이 말끝을 흐리며 잠시 물러나자 형진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 행님, 그런데 김부선이 하고 행님은 대체 어떤 관곕니꺼? 행님 이름이 ㄱㅂㅅ 잉께.... 서로 친 형제 아잉교?"
그 말에 나는 쫄딱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하필이면 김부선이 야그를 꺼내갓꼬...)
머리를 무릎사이에 꿍겨넣고 괴로워하는 내게, 언제 들어왔는지 주현이 씨바스 리갈 18년산을 한 잔 권했다.
" 어- 이거 17년산이 아니고 18년산이네...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