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들에게 쓴 편지(5)

알라스카김 2014. 7. 16. 16:39

한빛 보거라.

 

보내준 글 잘 읽었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 커피집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는 네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짓는다.

 

우선 먼저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을 몇 자 적으려 한다.

아무리 마음 편히 쓰는 글이라 할지라도  편지는 상대에 따라  글의 품격을 갖춰야 한다.

편지가 부자지간에 아무리 대화의 대용품이라하더라도  편지는 말이 아닌 글로 쓰는 것이다.

말이 생각의 즉흥적 표현이라면 글은 숙고의 산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말보다 글을 훨씬 더 신뢰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무릇 글을 쓰잔다면,에쎄이든 편지든, 내 마음과 뜻을 전달함에 있어 용어와 어휘의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에게 쓰는 너의 필법은 너무 자유자재하여 오히려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구나.

 

최근에 회사의 전사적인 행사에 네가 MC로서 또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니 장한 일이다.

문득 지난 설에 얼이가 혼자말처럼  하던 말이 생각나더구나.

" 내가 아버지를 20프로 닮았다면 빛이는 80프로를 닮았어..."

 당시 그 말을 무심코 듣고 있던 아버지는 , 닮았다는 것은 외모보다 기질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

추측컨대,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변설이나 , 행사진행을 할 때  발휘하는 재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너처럼 화려한 무대에 서본 적이 없으므로  너의 경우 가히  청출어람이라 해야겠다.  

그런 재능은 천부적인 것보다 스스로의 열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단한 노력과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임을 너도 잘 알것이다.

다만 한 발 물러나 스스로 삼갈 것은, 자기도취나 일회적 자족감에 급급하여 자칫 개인적 삶과 일상의 성실함이 경박함으로 변질되는 것이라  본다.

그 쉬운 예로,예술적인 끼를 인간승리의 삶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숱한 연예인들을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인간적인 면도 훌륭하게 가꾸어 가는 그런 사내로 살아가길 바란다.  

 

아버지의 일상이나  어머니와의 로맨스를 듣고 싶다고 했지?

 

어버지는 지난 4월 원고 유실이후로 글쓰는 일을 잠시 보류했다.

좋은 작품을 남겨야겟다는 생각과는 별도로 공모전에 응모하여 상금을 타겠다는 허황된 꿈이 화를 부른 것이란 생각이 들어 많이 자책했었다.

요샛말로 멘붕에 빠진 것이라고나 할까,그 여파로 다니던 교회도 발길을 끊었었지.

하나님 앞에 선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교회에서 섬기는 일도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그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야. 지금은 젊은 목사가 시무하는

영산포중앙교회를 일요일마다 나가고 있어.  일요일만 ,낮예배만 참석해. 애써 키웠던 내 믿음의 뿌리를 지켜야겠다는 일념뿐이야.

와중에 두어 달 십의 일조를 바치지 않았는데 , 최근  어머니의 실수로 접촉사고 보상금을 치르고 난 뒤에서야  하나님의 뜻을 깨우쳤지.

어머니도 나도 7월부턴 십의일조를 내기로 결심했어.

 

한편 그간 고문직으로 다니던 회사에서 아예 전무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있어 그러마 하고  전무직을 맡게 되었단다.

오늘은,전무직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손녀들을 위해 쓰라고 네 형수에게 삼십만원을 부쳤구나.

어머니도  3년 넘게 식당일을 하고 있어  최근들어 체력이 많이 쇠진해 보이길래 조만간 식당일에서 손을 떼라고 얘기를 하고 있다. 

현재로선 부부의 건강과 생활의 안정을 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상과 현실에 대한 시시비비나 이해득실의 기준에 대해선 조선시대의 선비들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야.

글은 가을이 오면  다시 쓰게 되리라. 누가 무어라 해도  내 능력이 닿는 한 꼭 보란듯한 장편 소설 두어 권은 남기고 싶구나.

다만 그 일을 위해 앞으로 건강을 다스리며 느긋하게 나를 몰아갈 생각이야.

 

지금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 사연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2시간 넘게 교정을 해가며 쓰는 편지가 오늘따라 힘드누나.

 

날마다 건강하고 활기있게,승리하며 살아가길 기도하마.

 

2014.07.10

 

나주에서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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