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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處暑

입추 다음에 귀뚜라미의 등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왔다. 새벽녘, 거듭된 열대야에 속옷차림으로 누웠다가 한기에 놀라 잠을 깬다. 길 가세 일렬로 심은 배롱나무의 백일홍, 꽃잎은 거뭇거뭇 시들어 가고 이때다 하고 논에는 벌써 장벼가 패였다. 남도의 농부는 그래서 이를 쌀나무라 부른단다. 옛부터 칠뤌칠석 무렵, 선비는 책을 말리고,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옷을 말린다고 했다. 여름내 눅눅해진 물건 을 꺼내 바람을 쐬고 햇빛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연에 순응한 선인들의 지혜가 지극히 아름답다. 웬 일로, 귀뚜라미가 우짖는 단장(斷腸)의 노래를 아직 듣지 못했다. 생각이 가벼워 적막한 밤을 기다리지 않은 탓이다. 소금을 캐러 차마고도의 설산을 넘는 히말라얀 캐러반과, 저 야크의 목동들..

산문 2022.08.26

덕자, 내게로 오다

고기 이름은 지도(송도) 어판장에서 산 5키로짜리 병어다. 흔한 말로 칠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덕자다. 누군가 이 보다 더 큰 놈은 경자(?)라 해서 웃음이 터졌다. 경자는 바로 곁에 선 교회 사모님 이름이었다. 광복절 날 ,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으로 수양회를 갔다가 귀로에 지도를 들러, 한 교인이 덜렁 10키로짜리 싱싱한 민어의 포를 떠 왔기로 인근 우산각에 20여 명이 둘러앉아 민어회의 황홀한 맛을 보며, 이구동성,민어는 여름이 제 철이라,회로 즐기려면 큰 놈이 좋제, 암 그라지라. 오늘, 살이 통통한 덕자의 옷을 벗기는 사람은 임자도가 고향인 김 권사님이다. 내장과 뼈 곁살은 지리국을 끓이고 뱃살 주변은 사시미로 만들었다. 아- 덕자여, 도대체 이건 또 무슨 별천지 바다의 맛이런가?

산문 2022.08.19

수박

수박 남목초등학교 6학년 김예랑 군복을 입고 일렬횡대로 시장 앞에 있는 씩씩한 아저씨들 무슨 훈련을 하려는 것일까? 비장하게 입을 꼭 다문 채 지나가는 사람들만 일일이 지켜보고 있다. ** 위 글은 욼산광역시 제18회 청소년 충효백일장에서 초등부 장원으로 교육감상을 받은 나의 둘째 손녀의 작품이다. 수박을 군인으로 의인화 시킨 그 독창성에 가히 장원감이란 생각이 들어 블로그에 올린다..

2022.08.19

전라도 장터 백반

점점 사라져 가는 전라도 음식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왕곡면에서 무안군 일로읍을 향해 달려갔다. 왕곡 등대교회 주말 청소를 하러온 집사 두명과 함께였다. 가이드는 음식 매니어인 정영채 집사였다. 목적지는 일로읍 시장골목에 있다는 일로식당. 백반만 파는 식당을 택한 것은 해산물을 전혀 먹지 못한다는 불편한 인생, 나종삼 집사 때문이었다. 작은 접시에 담아낸 반찬의 가지 수만 20 개. 접시로 나뉘어져 종류대로 취사선택이 용이할 것이란 추측이 적중한 셈이다. 반찬 중 상전은 조기매운탕과 고등어 구이였지만 나 집사에겐 애외였다. 쟁반에 얹혀진 젓가락 옆 접시엔 간장에 숙성시킨 건은색 돌게 한 마리다. 일인 분 9천원 밥값에, 나 집사는 3천원 어치만 먹었지만 전혀 억울해 하지 않았다..

산문 2022.07.30

나라 걱정

요즘 뉴스를 통해 정치판을 듣고 있노라니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다. 조국사태를 지켜본 전 정권이 현역 검찰총장의 옷을 벗기려고 거대 여당의 힘을 믿고 생난리를 치던 시절, 이에 맞서 정의와 공정의 기치를 들고 분연히 싸우던 윤석열이 드디어 지난 대선에서 일약 새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거대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졸지에 야당으로 전락하며 잇따른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국민들은 민주당의 오만과 독선과 내로남불을 선거를 통해 심판한 것이라 다들 믿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주체들이 이구동성 내뱉은 자기반성은 말 뿐이고, 되려 입있는 자들은 새 정권에 대한 혐오와 시샘과 조롱을 마치 사춘기 소녀들처럼 앞다투어 분출하기 시작했다. 새 대통령의 업무가 시작된 지 100여 일. 새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여..

카테고리 없음 2022.07.15

고양이 가족

고양이 가족이라는 제목이 스스로 낯설다. 이들 한 무리가 서로 가족인지, 저들이 내 가족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쯤부터 아침 저녁으로 현관에 몰려와 밥 달라 울어대는 바람에 읍내 슈퍼에서 사료를 사 먹이기를 시작했다. 저들의 잠자리는 이웃의 폐가다. 처음엔 내요량으로 서로 무리지어 동네를 싸돌며 먹이사냥을 하거나 동냥질을 하겠거니 생각했다. 내 집 마당을 가로지르거나 한 뼘만한 채전밭에 출몰하는 것을 두고 저들의 일상적인 통행 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밥을 주기 시작하면서 저들이 어느덧 내 일상속으로 스며들고 말았다. 어른 5-6마리,새끼 5-6마리 . 꽃을 사랑하는 아내는 이 놈들이 꽃무더기에 숨어들어 땅을 파헤치는 배설행위를 용납하지 못한다. 아이도 없는 집에 간혹 고함소리가 터지는 ..

산문 2022.07.14

발인예배 기도문(2)

이 땅의 뭇 생명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당신의 생명책에 기록된 왕곡 등대교회 정기심 권사님이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이제 당신이 예비해두신 천국으로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인이 가시는 그 길을 배웅하기 위해 이 시간 입관예배로 모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정결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어언 95 년의 수를 누리면서 고인이 흘려온 수많은 땀과 눈물들이 살아있는 자들의 사명이었던 것처럼, 고인의 살아생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던, 무심하고 게을렀던 섬김과 사랑 때문에 회한에 젖어있는 자식들을, 하나님 이 시간 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이별의 슬픔이 아닌, 요단강 건너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참으로 기쁘고..

카테고리 없음 2022.06.15

발인예배 기도문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침 당신의 사랑하는 황경애 집사님의 모친 이순심 여사의 발인예배로 모여 머리 숙였습니다. 고인은 90여 년에 걸친 이 땅의 사명을 다하고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 지금 이 순간 함께했던 가족들의 곁을 떠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유족들의 슬픔은 한도 끝도 없으나, 나를 믿고 순종하는 자 영원히 살리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따라, 고인이 가시는 그 길은 영원한 생명의 길이며, 환한 빛 가운데 만발한 아름다운 꽃길임을 저희들은 믿습니다. 천국에 가면 ,거룩하신 당신의 품안에서 그가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 복도 충만케 하옵소서. 또한 바라옵기는, 남은 가족들의 가슴속에 어머니로서 핢머니로 늘 살아계셔서 생전처럼 돌보시며, 저들이 오직 하나..

산문 2022.06.09

6월의 기도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셔서 언제나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그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주님을 만나러 나아와 엎드렸습니다. 저희들이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찬양과 영광을 홀로 무궁세세토록 받아주시옵소서. 주님, 지난 한 주간도 주님 뜻대로 온전히 살지 못했음믈 고백합니다. 이웃에 대해서나 나 자신에게도 주님이 가르치신 그 사랑을 열심히 베풀지 못했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미련한 성격이나 못난 버릇이나, 보잘것없는 자존심이거나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이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들의 죄를 이 시간 회개하오니 예수님의 십자가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시고, 부디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거룩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뭇 생물들..

산문 2022.06.05

해룡성(海龍城)과 풍류산방

나의 소설(아버지의 바다. 2021.11 출간) 출판 기념회를 열겠노라 풍류당에서 순천으로 나를 불렀다. 코로나 방역으로 차일피일 하다, 6개월 만에 갖는 모임인 셈이다. 찾아간 곳은 순천시 오금동의 한옥 고택. 사진 정면은 고택의 사랑채다. 풍류당의 고문이신 정형남 선생님이 초서로 쓴 '風類山房' 이란 현판이 걸렸다. 일찍 모인 사람들끼리 먼저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김칠선 회장은 사시사철 캡을 머리에 얹고 다니고, 송은일 교수는 일년 사이 백발이 더 무성해졌다. 송교수가 대뜸 고택산방의 자리가 자궁(子宮) 터란다. 자궁은 포란형과 유사한 비유로 들린다. 그는 이미 문화.역사나 풍수지리에도 일가견을 갖춘 풍류객이었다. 밝게 웃는 선준규 시인의 왼쪽에 앉은 문창원씨는 영락없는 청렴강인한 조선시대 선비의 ..

산문 2022.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