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다음에 귀뚜라미의 등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왔다. 새벽녘, 거듭된 열대야에 속옷차림으로 누웠다가 한기에 놀라 잠을 깬다. 길 가세 일렬로 심은 배롱나무의 백일홍, 꽃잎은 거뭇거뭇 시들어 가고 이때다 하고 논에는 벌써 장벼가 패였다. 남도의 농부는 그래서 이를 쌀나무라 부른단다. 옛부터 칠뤌칠석 무렵, 선비는 책을 말리고,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옷을 말린다고 했다. 여름내 눅눅해진 물건 을 꺼내 바람을 쐬고 햇빛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연에 순응한 선인들의 지혜가 지극히 아름답다. 웬 일로, 귀뚜라미가 우짖는 단장(斷腸)의 노래를 아직 듣지 못했다. 생각이 가벼워 적막한 밤을 기다리지 않은 탓이다. 소금을 캐러 차마고도의 설산을 넘는 히말라얀 캐러반과, 저 야크의 목동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