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설

수바의 동쪽-11

알라스카김 2015. 8. 20. 13:46

 

 

저녁을 배부르게 먹었지만 속은 편치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변비가 계속되었으므로 아랫배가 묵직하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치 대장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머리까지 스믈거리며 올라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좁은 배에서 대장의 운동을 촉진시킬 마땅한 방도가 생각나지 않아 선미 상갑판으로 나가 쪼굴뛰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흔들리는 배와 함께 더러 옆으로 나뒹굴기도 하면서 이마에 땀이 솟아날 때까지 뛰고 또 뛰었습니다. 시커먼 바다가 하얀 포말을 흩날리며 자꾸 뒤쫓아 왔지만  만 삼일을 배에서 지낸 뒤여서 영문도 모르게 엄습하는 두려움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습니다. 속이 울렁거리는 가벼운 멀미끼도 사라지고  흔들리는 배위를 내딛는 발걸음도 제법 안정감이 붙었던 것입니다.

밤에 이루어지는 양승작업이었기에 메인라인이 터지는 일이 잦았습니다. 메인라인 드럼에 걸리는 주승(主繩)의 부하는 약 35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부이줄과 부이줄 사이의 주승의 길이가 약 1키로미터인데 바다속으로 깊이 늘어진 부분의 수심이 300 미터에 이른다니 그 부하가 짐작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그래서 메인라인 드럼,또는 스풀(spool)이라 부르는 원통은 알루미늄과 주석을 합금한 특수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침로와 선속을 컨트롤하는 브릿지에서의 조타와  갑판의 라인 블록에 붙어선 선원이 조작하는 유압스위치 작동에 엇박자가 나면 부하가 가중되어 곧잘 주승이 끊어지곤 하였습니다. 주승이 한번 터지면 부이를 찾기까지 대략 30분 정도가 소요되었습니다. 이런 로스타임이 포함되므로 양승시간이 거의 18시간이나 소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한국 어선에서는 유압스위치 조작은 으례 노련한  갑판장 몫이었습니다. 그 때는 주승이 한번 끊어지면 어황에 예민해진 선장이 선내 마이크로 고성을 지르기 일쑤였습니다. 고단한 갑판원들은 그 소리에 놀라 밀려오는 졸음을 억지로 떨쳐내며 흉흉한 바다를 죽기살기로 응시했을 것입니다.

씨윌호에서 제일 신기한 것은 피지인들의 낙천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양승작업내내 웃고 떠들었습니다. 29살의 미혼인 조세바(Joseva)가 그중 제일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잘 다듬어진 근육질의 몸에 15세 소년같이 맑은 눈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그 나이에 벌써 딸 아들이 세 명인 루부이와(Luvuiwai)와 비교하면  하는 짓이 영판 철없는 개구장이였습니다. 작업에 열중인 동료들 뒤로 살며시 다가가 사람을 놀래키는 소리를 지르거나 엉덩이밑으로 손가락을 찌르거나 해서 장난을 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그들은 누구도,심지어 인도네시아 선원들조차 싫어하지 않고 넉넉하게 그런 장난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원숭이 새끼들처럼 서로 장난질로 히히덕거리며 지루한 양승작업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대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옛날 한국 선원들이었다면 누구 하나 다쳐도 크게 다칠 법한데 저 친구들은 참 희한해요.”

자정무렵까지 빅 아이와 옐로우 핀의 어획량이 저조하였습니다. 알바코도 기대이하로 적게 올라왔습니다. 지난 항차까지 172도 어장에서 알바코 위주의 조업을 했던 오 선장이 처음으로 175도 어장을 선택한 것은 횟감용인 빅 아이나 옐로우 핀을 겨냥했던 것입니다. 선장은 다시 적수(適水)를 검토하는 눈치였습니다. 적수(適水)한다는 말은 일본식 표현인 바, 참치군을 찾아 어장이동을 한다는 뜻입니다.

“더 동쪽으로 가야할 모양입니다.”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은 것은 어장이동의 결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는 서경 180까지 나아갈 요량인지 해도를 펼쳐놓고 수바의 먼 동쪽 경제수역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항해시간만 하루 반나절인 거리였습니다.  

 

 


'비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바의 동쪽-13  (0) 2015.08.20
수바의 동쪽-12  (0) 2015.08.20
수바의 동쪽-10  (0) 2015.08.20
수바의 동쪽-9  (0) 2015.08.20
수바의 동쪽-8  (0) 201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