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씨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알라스카김 2008. 9. 24. 13:55

지난 주 캐나다 밴쿠우버와 미국 씨애틀을 다녀왔다. 미국 서부연안에서 나는 홍어.가오리 구매를 위해 현지 브로커와 관련자들을 만나러 간 것인데 안개속을 더듬는 일과 같아 답답하고 안타까운 나날이었다.미국 현지교포들이 돈보따리를 싸들고 미국의 서부연안을 쥐새끼들마냥 돌아다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였다.산지에서 현금을 쏘아대니 T.T 나 L/C 가 효험이 없는 seller market이 되어있었던 것이다.이 죽일 놈의 홍어야!

씨애틀에서는 Union lake 주변의 호텔에 묵었는데,그 멋진 풍광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마다 쉬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호숫가와 인접한 쓰시바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호숫가의 계류장에 즐비한 요트들을 보면서, 이곳에서 톰행크스와 맥라이언이 주연한 '씨애틀의 잠못이루는 밤'이 촬영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미궁속을 헤매는 상담때문에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하물며 십년만에 조우한 미국인 친구에게 Don't sleep night in Seattle 이라고 읊었다가 Sleepless night in Seattle 라고 교정을 받았으니...두문불출한 십년의 세월이 나로 하여금 영어의 순발력을 모두 앗아간 느낌이었다. 이래저래 우울한 밤이었다.

씨애틀을 떠나기 하루 전 호숫가 주변을 산책하고 있노라니 길가의 잔뒤밭 위로 올라온 한 무리의 기러기들이 잔디풀을 쪼아대고 있었다.기러기가 풀을 뜯어 먹다니...9th Avenue를 걸어 한국식당인 신라관을 찾는 중에 Denny Park의 의자에 잠시 머물렀다.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조그만 공원이었는데 1853년 씨애틀에 조성된 최초의 시민공원이었다는 비록이 눈에 들어왔다.과연 전나무와 활엽수들의 우람한 그루터기가 백년도 더 된 공원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었다.그곳에 60여년 전에 몰한 '우리들의 친구였으며 하느님의 말씀을 증거했던' William.W.Mathuee 의 흉상이 서 있었다.훌륭한 정치가나 군인보다 한 사람의 목사의 죽음이 그들에겐 더욱 애통하였던 것이다.

호숫가를 에워싼 가로수들은 모두 붉거나 노란색의 잎을 띈 단풍나무들이었다. 낙엽들은 모두 제 나무 발밑으로만 떨어져 저의 몸이었던 나무를 위해 최후를 맞을 요량이었다.낙엽의 그 거룩함을 기리노라 몇날 밤이 지나도 빗자루를 든 청소부는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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