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봄이 오는 소리(3)

알라스카김 2008. 9. 24. 14:09

어제 종일 비가 내렸다. 주룩주룩 내리는 폼이 영락없는 봄비였다. 누구랴, 이미 성큼 다가온 이 봄을 부인할 사람이 . 예수가 부활한 사건이 이 이른 봄이었다니 묘妙한 일이다. 새벽부터 오후 늦게까지 교회에서 부활주일을 찬양했다. 눈이 멀어 악보를 잘 읽지 못하는데도 성가대의 테너자리에 연연하며 칸타타를 불렀다. 아직까지 목소리 하나는 남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기분이 상쾌하였으며 머리로 가슴으로 소망이 샘물처럼 솟았다. 나의 내부로부터 �끓는 이 유쾌한 생명의 소리여. 햇살은 밝고 바람은 따뜻했다.

춘풍(春風)은 맨 먼저 남쪽으로부터 불어온다. 동남풍이라 부르는 이 바람은 여름이면 습한 기운을 몰아와 어부에겐 치명적이나 3월의 춘풍은 한라산의 잔설을 녹이며 대지의 잠을 깨운다. 음기(陰氣)가 동하므로 만물이 소생한다. 들판에 논밭두렁에 제일 먼저 쑥과 냉이 달래같은 나물이 솟고, 한라산 기슭엔 고사리가 돋자마자 개나리가 작렬한다.

봄바람에 녹는 것에 처녀의 가슴도 있다. 바람이 희롱하는 것인지 대지의 음기가 솟구쳐서인지 봄바람을 쐬고 온 여자는 어른 아이없이 얼굴이 술에 취한듯 볼그스레함을 느낄 수 있다. 땅과 여자는 역易에서는 다 음陰이라 친다. 바구니를 끼고 봄의 들녘에 쪼구려 앉아 나물을 캐는 여자들을 상상해 보라. 약동하는 대지의 기운이 허벅지다리 사이로 파고들어 몸속으로 번지게 되는데 , 바로 그게 사랑의 묘약이라 가슴이 벌렁거리고 볼이 뜨거워지고 그러는 것이다.그래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 푼다. 자연의 이치가 참으로 현묘(玄妙)하다.

200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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