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군사우편(4)

알라스카김 2008. 9. 24. 14:25

김한빛 병장에게.

네가 보낸 장문의 편지를 받고 아버지는 향긋한 복분자 술 한 잔을 음미하는듯 했다.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에 걸맞게 네 글도 완숙미가 넘치고 정신도 일취월장한듯 하여 새삼 국방부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일더구나.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보낸다니 곧 어른이 다 되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고 특히 가리느까 독서에 침잠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반갑고 기쁜 마음을 가눌 수가 없더구나.

네가 읽었다는 책들과 그 책들에 대한 짧은 독후감도 근사했다.

책을 읽을수록 책에 대한 욕심이 인다는 얘기는 만고의 진리다. 책속에 천지자연이 있고 인생의 희노애락이 있고 우주와 세계가 있으니 책을 읽는 즐거움은 아무리 지나치다 해도 선하고 유익한 일인게야. 한국의 지성이라 일컫는 이어령(李御寧)씨나 문호의 반열에 오름직한 이문열(李文烈) 씨가 일찍이 청년시절에 5 만 여권의 책을 독파했다는 것은 하나의 작은 전설인데 동서고금의 사상과 철학을 한눈에 꿰뚫으며 장강(長江)을 날으는 대붕(大鵬)의 기개로 자신의 학문을 펼치는 도올 김용옥(金容沃)에 이르면 독서의 힘이 얼마나 유용하고 위대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게야.

특히 최근에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 일 번으로 선출된 장애자인 여성 노동운동가의 경우 무학인데도 일 만 권의 독서량을 자랑한다니 놀라운 일이야. 하루에 한 권을 읽는다 해도 만 권을 소화하려면 27 년의 세월인데,과연 그 내공(內功)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 아닌가.

책을 읽어 나가면서 자기의 생각을 가다듬고 사상을 연마하며 인생을 통찰하는 눈을 키워 나간다는 점에서 책은 훌륭한 스승인게야. 비로소 내 아들이 독서의 유용함에 눈뜨고 불가능의 꿈을 가슴에 품게 되었다는 대목에 이르러 나의 기쁨은 가슴이 벅찰 지경이었단다.

그러나,아버지로서 한 마디 조언한다면 스스로 자유를 터득해야 한다는 점이야.성경에서도 일컫듯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는 말을 기억하지? 맑스의 자본론(資本論)이 세기말의 허무주의에 식상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혼을 불살라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듯이 ,경도(傾到)된 지식이 이념화되어 인류를 망치는 정치로 내닫는 불행한 역사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는 하나일지라도 세상의 진리는 둘일 수도 그 이상일수도 있는게야.

독서외에도 젊은 날에 경험할 일로 네게 여행을 권하고 싶다. 요즈음은 우리나라도 많은 대학생들이 배낭여행으로 세계를 유람하며 산 지식과 넓은 눈을 키우는데 열심인데, 일찌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서양인들의 눈을 틔워 근대사를 바꿔 놓았듯이 여행은 인류의 보편성을 깨닫고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데 더할수 없는 공부라고 생각해. 베나르 베르베르의 말을 빌린다면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형성하는 자유"를 체득할 수 있다는 얘기야.

네가 말하는 불가능의 꿈이 이런 수련과 자기연마를 거쳐 조금 씩 구체화 되고 실현 가능의 꿈으로 발전하기를 바래. 네가 말했듯이 나도 "얘기를 나누고 싶은 가장 든든한 남자 친구"로 너와 함께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건강하고 씩씩한 아버지로 살아가도록 항상 노력할께.

네가 군문을 나설 때 너의 어깨에 드리워진 배낭이 아버지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수 있도록 어제처럼 너의 내일도 소중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


2004.5.5 어린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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