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새와 나

알라스카김 2011. 2. 20. 22:20

참새와 나

 

 

 아침이면 아내는  마당의 화단에 물을 뿌렸습니다. 늦잠이 버릇인 나는 아내의 그런 이른 노동을 늘 잠결에 들었습니다.  우리집 마당엔 아내의 수고로 사시사철 꽃이 피었습니다.

 

 겨울바람이 떠날 때면 맨 먼저 개동백이 잎을 열고요,다음으론 수선화와 함박꽃이 경주하듯 꽃망울을 맺지요 .5월에는 장미가 6월에는 수국과 나리꽃들이 ,그리고 나팔꽃 채송화 등 난쟁이 꽃들이 줄줄이 등장하며 나를 기뻐게 해주었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분들은 꿈같은 얘기로 들리겠지만 단독주택에 사는 저의 경우엔  절기에 따라 식물들의 생명잔치를 감상하는 재미가  조금 과장하여 황홀,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지런한 아내가 참새를 우리집 마당에 불러 들였습니다. 아내가 뭐 자연주의자로 이름이 난 것은 아니고 제가 생각컨데 타고난 심성이 너무 고아 아무에게나 선심을 쓰는 탓에 동식물을 망라하여

죄 애정을 갖기 때문이라  생각했지요.

 

 아내가 참새를 부른 미끼는 다름아닌 묵은 쌀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아침은 갑자기 무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습관적으로 기상이 늦은 저에겐 참새들의 지저김이 처음에는  마치 악마의 합창이었던 거죠. 그런 참새들의 소란이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마치 비발디의 사계처럼 내게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움악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먹거리가 절대 부족햇던 50년대 시골의 건강했던 입들은 참새사냥을 기억하시겠지요. 마당가에 실을 맨 지게 작대기에 소쿠리나  키를 얹고 그 아래 나락을 뿌린 뒤 참새가 나락을 쪼아먹을려고 덤벼둘 때까지 숨숙이며 기다리던 낭만적인 방법이 있었는가 하면, 어둔 밤  석유등을  켜서  들고 초가집 볏집 이엉 처마깃에 스며들어 곤히 자는 참새들을 맨손으로 포획하던 우악스런 방법도 있었지요.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면서 나는 시원한 거실마루에 잠자리를 정했는데 ,이른 아침 눈을 뜨면 발을 내린 현관문 바깥 마당에서 참새들이 모이를 쪼며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되어버렸 던 것입니다. 아내가 꽃에 물을 다 준 뒤 마지막 일로  마당가에 묵은 쌀을 뿌려놓으면 참새들은 불과 일 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우르르 떼지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나는 참새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나 공연히 마음을 쓰게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머물다 그렇게 금새 나타나는 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지요. 독수리처럼 높은 창공을 누비지 않으므로  참새가 눈이 밝은 새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며,  개처럼 후각이 뛰어난 새라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말입니다. 그렇지만 청각은 매우 예민한 새가 분명한 것이 내가 그들의 아침식사 광경을 가까이 다가가 볼려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라도 하면 그 즉시 포르릉 하고  일제히 지구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시절 참새사냥에 희생된 저들 선조들을 기억하여 일음촌각도 사주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나 생각될 정도였답니다.  참새들의 낙하를  다시 보련다면 나는 한동안 숨소리조차 낼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참새를 보는  또 다른 즐거움은 그들이 비상할 때 보여주는 날렵하면서도 삽상한 몸짓이었습니다.

 

  그런 참새의 비상을 보고 있노라면, 저런 작은 동물도 제 목숨을 위해  저토록 최선을 다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인 나의 처신이 부끄러워지곤 했습니다. 몸에 해롭다는 술과 담배를  여지껏 끊지 못하고,늘 기름진 음식을  탐하여 스스로  육적인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그렇고 ,세상살이에서도  앉고 일어서는 일이 분명하지 못하여  늘 인간적인 번뇌에 사로잡히는 성정이 그러했습니다.   이렇듯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참새를 통해 교훈을 얻는 아직  학생일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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