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평사낙안(平沙落雁)

알라스카김 2012. 6. 26. 11:04

 

 

 

 

 현 정부의 주요 국가시책인 4대강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정부. 여당과,야당. 시민환경단체들간의 극심한 논쟁이 시작될 무렵 나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선도했던 뉴디일정책을 언뜻 머리에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이 정부가 출범할 당시 나라 안팎의 경제사정은 몹시 어두웠다. 오늘날 세계 경제시장의 환경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하였으므로 단순히 70년대식 개발논리로 국내경기가 쉽게 진작되리란 기대는 무리였지만, 내수경기회복을 위해 우선 일거리 창출이 절실하다는 측면과 강과 하천의 새로운 정비사업은 지난 시대에 무분별하게 진행되었던 수자원관리의 오류를 시정한다는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4대강 사업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10여 년전 수산물 유통업을 자영했던 나는 생업과 직결된 일로 광주 양동시장과 목포의 동명동 수산시장과 영산포 등지를 자주 돌아다녔다. 그 무렵 영산포가 고려말에서 일제시대까지 수운의 요충지로서 번성했던 포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지금의 영산동 홍어의 거리 강변(선착장)에 보존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내륙등대가 그  증거였다.

 1999년이었지 싶다. 지금의 나주 영산동 홍어의 거리에 영산교가 새로 지어져 개통식을 할 때 우연히 나는 그곳에 있었다. 그 때 어느 악사가 트럼펫으로 연주하던 ‘영산강 처녀’라는 노랫가락을 듣고 나는 가슴이 저린 적이 있었다. 송춘희가 부른 그 노래는 그 후 노래방을 찾을 때마다 남자키로 부르는 나의 십팔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영산강의 모습은 언제 이곳에 배들이 정박했던가 싶을 정도로 초라한 하천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1970년대에 홍수예방과 농업용수확보를 목적으로 한 영산강유역종합개발사업의 역기능이 초래한 산물이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주로 생활근거를 옮긴 후로 영산강과 영산포의 역사에 대한 궁금증으로 갈급하던 내가 ‘영산강 삼백오십리-물길따라 뱃길따라’(김경수 편저)란 책을 손에 넣고 나서였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 내용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영산강의 시원은 담양 용면 용연리 가마골 용추봉 (584m) 남쪽기슭인 용추골이며 그 길이는 136킬로미터라고 했다. 영산강의 본류구간 136킬로미터(1리 392미터로 산정하면)는 약 삼백 오십 리에 달한다. 강 유역의 샛강으로 1천3백45개의 물줄기가 나뭇가지 모양을 이루었다. 담양 가마골을 출발한 영산강이 광주에 이르면 극락강의 이름으로 송정리비행장 남쪽에서 병풍산과 입암산성에서 나온 황룡강과 만나고 나주 금천에 이르면 화순 이양 쌍봉사 계곡 곡천리난골에서 발원한 지석강과 합류,광탄(너뱅이 여울)이 된다. 이어 나주를 지나 다시면 석관정에서 장성 태청산에서 발원한 고막원천과 합강되고 함평 사포에 도달하면 영광군남면 금산에서 나와 함평읍을 거친 함평천과 만나 사호강이 된다. 나주 동강면 곡천과 무안 어오지(느리지)에서 굽어 곡강이 되어 남해만으로 나아간다.

 영산강 유역의 들판은 대부분 깍이고 닳아 생긴 침식평야로 특이 두 강이 합류하는 곳은 침식분지형식이 많다. 그러나 두께는 얇으나 본류와 지류가 만나는 담양.광주.나주,함평,학교 같은 곳은 넓고 두꺼운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나주는 영산강의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영산강이 전남의 젖줄이라고 일컬어진 것도 바로 이 나주평야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나주평야는 영산강의 범람이 일군 것이었다.

 영산강의 홍수기록은 814년부터 1927년까지 큰 홍수만 32회였다고 한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인한 대홍수는 가장 최근의 것이 1974년과 1989년의 대홍수였다. 여러 샛강이 나주부근에서 합류하여 불어난 물이 영산포 밑 앙암부근에 이르러 강폭이 좁아 하류로 빨리 내려가지 못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하류로부터 조수가 거슬러 올라 더욱 강의 범람을 부추겨 영산포 부근의 ‘새끼내들’은 온통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나주에서는 다도면 일대,지석강 지류인 대조천을 막는 나주댐이 생겼는가 하면 조수의 유입을 차단하는 하구언둑의 물막이 공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한 순기능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갈수기의 영산강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로 생명을 잃어버린 강이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영산강을 댐공사로 인해 상류로부터의 유입량이 줄어 젖이 부족하고 하구둑으로 인해 항문이 막혀버린 환자가 되었다고 표현했다. 영산강의 지류와 본류를 통찰하고 강의 유역에 거주했던 옛 사람들의 유물과 유적들을 탐구한 끝에 저자는 영산강의 생명을 살리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가장 공감이 가는 부분은 다음의 구절이었다.

 

 안정된 물공급은 우수기의 물을 가두어놓는 댐보다는 강의 본래의 역할과 기능을 되살려주는 최소한의 인위적인 처방인 보(洑)가 우월한 방법이다. 강은 물이 흘러야 된다. 깨끗한 물이 흘러내리면 유역 자체가 물 보관소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09년 11월에 시작된 영산강 살리기 사업이 올해 6월부로 주요 사업목표의 90%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최근 나는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요일 오후 짬을 내어 승촌보와 죽산보를 둘러보았다. 승촌보의 총길이는 512m에 위로 열리는 승강식 수문을 만든 가동보의 길이만 187.5m였다. 다리 위로는 차량통행을 위한 차도와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건널 수 있는 인도로 길을 나누었고 다리의 머리는 나주평야의 쌀을 이미지화한 조형물을 얹어 외관이 수려했다. 퇴적물과 수서식물들을 말끔히 걷어낸 넓은 강폭은 푸른 물로 가득 채워져 다리 위에서 넘실대는 영산강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이 왔다. 수변공간에는 시민들의 휴식처와 영산강 문화관 건물이 들어섰는가 하면 따로이 오토캠프장도 마련하였다고 하는데 이곳은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벌써 사람들로 붐빈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차장에는 이미 차들로 붐볐고 승촌보 준공 기념으로 세운 비석에 새긴 평사낙안(平沙落雁)이란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강가의 넓은 모래톱에 기러기 내려앉다. 아-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다시면을 향해 가다가 영상테마파크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 10여 분쯤 차를 달려가자 죽산보가 나왔다. 넓은 벌판 한 가운데 외따로이 있어 그런지 외관이 승촌보처럼 아름답지는 못했으나 영산강 8경과 연계된 물길이자 자전거 종주도로가 이어지는 코스인지라 주차장엔 자전거여행 동호인들이 몇 몇 다리를 풀며 앉았고 차를 몰고 온 관광객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죽산보 또한 가동보 수문은 승강식이어서 일정한 수위를 확보하면서도 하천의 흐름을 막지 않고 수문 위로 물을 흘러 보내 강물의 막힘이 없었다. 이곳은 배의 출입을 위한 통선문이 운하의 갑문식으로 설계된 점이 특이했다.

 보와 더불어 강으로 유입되는 하수처리장과 총인시설 등의 공사가 병행되므로 수질오염의 대책은 마련된 것으로 여겨졌고 두 곳 다 모두 소수력 발전소가 가동되어 인근 주민들에게 전력공급원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어 일견 대견한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영산강 살리기 사업의 효과가 무엇인지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맑은 강물이 넘쳐흐르니 무엇보다도 주변의 마을과 도시들이 아름다워졌다. 올해 봄부터 지속된 몇 십 년만의 가뭄에도 불구하고 영산강 주변의 농부들은 물부족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강의 퇴적토를 준설하여 물을 담는 그릇을 키운 덕분에 앞으로는 홍수걱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강으로 유입되는 하수처리장과 총인시설 등의 공사와 지류의 환경개선도 병행되고 있어 정부가 목표로 하는 2급수로의 수질개선도 곧 현실화 되리라 본다. 수질개선은 생태계의 복원을 의미하므로 강은 비로소 자연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아가 친환경 하천조성으로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수운을 통해 강의 이용을 극대화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영산강 뱃길복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로교통 의존율은 높은데 도로확충은 소걸음인 실정을 감안해볼 때 더욱 그렇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머지않아 영산포 선착장을 위시한 주변의 강에는 황포돛배와 날렵하게 생긴 요트와 모터보터와 카누 등이 떠다닐 것이고, 드디어 영산강은 물과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생명의 강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아침저녁으로 영산강을 끼고 수변 공원을 산책하는 나는 아주 행복할 것이다.

 

 다만 직할하천과 지방.준용하천으로 구분되는 현행 하천법으로 영산강으로 유입되는 수많은 지류들의 수질 및 환경관리를 앞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지, 아름다운 강의 유지.보존을 위해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범국민적 운동은 또한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져야할 것인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가에 서서  (0) 2012.10.12
찬양의 은혜  (0) 2012.06.26
L 시인에게  (0) 2012.03.12
봄은 사랑이다  (0) 2012.03.04
모자  (0) 2012.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