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아들에게 쓰는 편지-3

알라스카김 2015. 8. 6. 13:04

아들에게 쓰는 편지

 

얼아!

목사인 네게 애비라고 이렇게 이름을 막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 부산에 일이 있어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대신동 큰 처남을 만났단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황 목사의 안부를 물으니 먼저 탄식부터 하더구나. 그 조카의 나이도 이제 마흔 다섯, 담임목사의 자리를 얻어 진작 독립을 할 줄로 알았는데 아직 부목사의 자리에 묶여 있으니 아버지로서 사뭇 애가 타는 노릇이었던 게야.

더욱이 낼 모레 팔순을 내다보는 나이인데다, 내외가 미혼인 딸에게 노년을 의탁하고 있는 처지이고 보니 아들의 처지가 더욱 못마땅하고 속상한 일로 생각되는 모양이었어.

부모로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이지만, 자식의 일로 한숨을 짓던 그 모습이 이제는 스스로 아무것도 도모할 수 없는 은퇴 장로님의 자괴감이려니 생각되어, 나도 시간이 더 지나면 큰 처남처럼 너의 일로 저렇게 속상해 하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하였다. 한편으론 오늘날 교회 목사의 바람직한 역할과 사명은 무엇일까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지.

 

언젠가 네게 편지를 쓰면서 언급한 적이 있다만, 시골 교회 목사님의 메마른 설교에 지쳐하면서도 주일성수를 위한 의무감으로 교회출석을 이어가고 있는 나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는 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 죄책감으로 여전히 전전긍긍하고 있어.

여기서 메마른 설교란 신약이건 구약이건 설교제목과 부합하는 성경구절만을 조합하여 우리에게 책장을 들춰가며 읽게 하고, 자신이 다시 읽으면서 부연설명을 하는 것을 반복하는 그런 설교를 말함이야.

설교방식의 당위성으로서,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가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다 깨닫게 하니 모든 백성이 울며 회개하던 일을 예로 들어,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대언하는 자여야 하며 한 톨이라도 인간의 생각이나 말을 섞어서는 안 된다는 구약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는 목사님인데 나는 그의 이런 생각이 시대적 착오이며, 하나님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자의 변명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어.

즉 그의 설교는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재미와 감동이 없는 설교인 셈인데, 성경구절이 품고 있는 메시지를 현대적인 말(또는 예화)로 풀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성경적인 삶의 지혜를 전달함과 동시에 잠자는 우리들의 영성을 일깨우는 것이 왜 비성경적이라는 것인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에 대해선 아무런 해명이 없으므로 더욱 나는 공감할 수 없다는 생각이야.

 

성경구절을 바탕으로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설교자(목사)의 몫인 바, 나는 이것이 목사 개개인의 체험이나 능력에 비례하는, 곧 성경에서 얘기하는 성령의 은사라고 생각해.

또한 시골교회 목사님은 성령은사를 방언을 받는 것으로 단순화 하고 이를 성령세례라며 일삼는 데, 사도바울의 구체적인 예증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받아들여지지가 않아.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일단의 무리들은 주위 사람에 아랑곳없이 즐겨 큰 소리로 방언기도를 쏟아내는가 하면 이를 두고 이구동성 성령충만한 기도라며 자찬하는 데 나는 도무지 그 말에 동의할 수가 없어.

 

교회 안에서 느끼는 이러한 이질감과 불편함을 단순히 교단의 교리나 진리를 향한 의식(儀飾)의 차이라고 치부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 주실까...얼이 너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구나.

내게 있어 성령께서 역사하심은 설교나 찬양을 듣고 있을 때 나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흐르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어. 단언컨대,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 신앙에 대한 뜨거움과 사모함이 간절했던 기억이 뚜렷해.

시골교회 목사님은 종종 모세에게 대든 고라의 무리를 인용하며 교만의 죄를 경계하시지만, 정직한 비판도 나는 겸손한 자의 미덕이라고 생각해.

 

며칠 전 이어령씨가 쓴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단숨에 읽고 난 뒤 더욱 얼이 네게 이 편지를 쓰고 싶었다. 작가의 말처럼 나도 지성(知性)에서 영성(靈性)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에 겨우 서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더구나( 나의 경우 지성이란 말은 가당찮은 것이지만, 덕분에 앞서 호소한 시골교회에서 겪는 이질감과 불편함이 쥐꼬리만 한 나의 지성에서 비롯되었음을 뉘우치고는 곧장 회개했다). 한국의 지성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그가 만년에 기독교에 귀의하게 된 과정의 고백도 감동적이었지만 교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기독교적 리더십의 요체로 그가 감동(感動)을 지적한 것에 대해 나는 갈채를 보냈단다.

그의 회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그의 딸(김 한길 국회의원의 첫 부인)이었더군. 그러나 내가 주목한 것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천재였지만 인간적인 불행에 끊임없이 신음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감동시켜 기독교 신자로 거듭나게 하고, 결국은 사랑의 전도사로 일할 수 있게 한 사람이 바로 고() 하 영조 목사였다는 점이야. 이 대목에서 나는 스스로 자주 화두에 올리는 목사의 시대적, 사회적 사명과 역할에 그 해답을 찾은 것만 같았어.

아버지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80년대 초반, 고인은 40대의 나이에 벌써 장안에 명성이 자자했던 목사였었지. 영성이 뛰어난, 교회의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했던(그 시절 ‘... 이란 제목의 신앙수상집을 교회 자체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했던 기억이 나) 목사로 기억해.

 

결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출석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 일은, 그리하여 진정 이 땅 위에 천국의 문과 하나님의 지경을 넓히는 일은 팔 할이 목사의 몫이라고 말하고 싶어. 나는 얼이 네가 장차 감동의 목회사역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그러므로 너의 생애가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찬란히 빛나길 바란다. 담임목사가 되고 안 되고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해.

 

아버지는 앞으로 남은 생을 더욱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련다. 나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수많은 나날을 눈물로 기도했지만, 나는 너를 위해 고요히 기도하며 응원하는 아버지가 되련다.

 

 

201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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