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초파일 날 마지막으로 찾았던 아버님 묘소.
하관하던 순간 목을 놓아 울었던 혈(血)에 대한 연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3년 전부터 기약했던 종중의 묘원이 드디어 완성되어 시제를 겸해 준공식을 가진다 해서 나주에서 거제도까지 차를 몰고 달려갔다.
敬五 할아버님의 슬하엔 이제 90줄에 들어선 며느리 둘만 남았고 아버님 아래론 아직 아들과 딸과 며느리들이 줄줄이 살아 있다. 병원에 누운 자와 바다에 떠있는 형제를 제하곤 대부분 행사에 참여한 셈이다.
50년대를 전후하여 10남매의 자녀를 두었으니 아버님의 삶도 참 고단하셨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무학으로 바다와 육지를 전전했던 그 고달팠던 삶을 더듬으면 내 사는 모습이 용렬하고 초라하단 생각뿐이다
공동묘지와 외진 산 중턱을 오르내리던 한 여름 성묘길의 노동을 면케해준 종중회의 임원들에게 감사 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