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삭거(索居)

알라스카김 2013. 6. 4. 12:47




 전라도 나주로 이주한 지도 3년이 지났다. 올해 음력 나이로 환갑에 들었으나 아무래도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아 하루하루 마음이 편치 않다. 공자 왈,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지만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손가락 사이 모래알 빠지듯 온갖 것이 허허롭다. 더 나아가면 모골이 송연하고 끝 모를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늘의 뜻이란 사람이 제각각 타고난 인생의 소명을 앎이 아니런가.

  창세에 하나님이 정한 인간의 수한은 120년이었다. 하나님의 언약 이후 최초로 이 수한을 지킨 자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구출해낸 모세였고 이스라엘의 부족장 '갈렙'은 나이 80에 전장마다 앞장서서 용맹과 강건함을 떨쳤다. 이를 근거로 볼 때 나이 60은 하나님이 허용한 인생의 절반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그래서 환갑을 기념하여, 내 딴엔 새로운 인생역전의 기회를 만들어 볼 요량으로 직장을 관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글 쓰는 일이 나의 길이 아니다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이는 나의 재능이 그 뜻에 미치지 못하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하늘에 무리지어 떠도는 구름처럼 변화무상한 상상력도, 세상을 휘둘러 꿰뚫는 직관력이나 식견도, 남을 감동시킬 만한 문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제목을 정하고 진행하던 원고를 중도에 방기한 채 몇 개월째 무위도식하는 자처럼 지내고 있다. 정신이 맑은 날은 손에 잡히는 대로 남의 글을 읽고, 정신이 가물거릴 때면 유선방송의 외화를 감상하며 공짜 같은 시간을 죽이고, 간혹 건강이 염려되는 날이면 가까운 산을 오르기도 한다. 당분간은 이런 식으로 나를 함부로 내버려두려 한다. 특히 최근엔 서해안에 즐비한 섬들을 차례로 탐방하고픈 해묵은 소원을 좇아 행장을 꾸리기도 했다. 스스로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작정한 일상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 언제나 쓸쓸한 바람이 지치고 간다.

 

  어느 날, 사서오경의 '예기'편을 읽다가 삭거(索居)란 단어를 발견하곤 지금의 나의 형편에 꼭 들어맞는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눈마저 어두워진 자하(子夏)가 자학하는 꼴을 보며 멀리서 찾아온 증자(曾子)가 자하의 부덕함을 조목조목 꾸짖자 짚고 있던 지팡이를 던지고 절을 하며 자하가 증자에게 이렇게 사과했다고 한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친구들과 떨어져 외롭게 산지가 너무 오랜 때문이었어."

 여기서 삭거(索居)란 외로이 떨어져 산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또 다른 하루,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가사문학관을 거쳐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는 면앙정(免仰停)을 찾았다. 조선 중종시대에 살았던 강호가사의 원조인 송순(宋純)이 나이 70을 넘어 관직을 벗고 손수지은 이곳 정자에서 문인.학자들과 교류하며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의 나이 87세 때인, 과거급제 60주연을 자축하는 회방연에서 그가 대취하자 송강 정철,기대승,고경명,임제 등 제자들이 손으로 가마를 만들어 스승을 댁으로 모셨다지 않는가.

  아- 송순의 고일(高逸)한 삶이여!

  면앙정을 떠나며 나는 늙어서도 한 우물곁에 노닐었던 옛 선비들이 부러워 긴 한숨을 짓다가, 문득 공자의 다음 말씀이 떠올라 머리를 휘저었다.

 

人無遠慮 必有近憂 (사람이 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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