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형님과 산을 타다

알라스카김 2013. 10. 28. 10:11

스마트폰을 산 뒤 카카오톡을 깔았더니 지인들의 목록이 자동으로 뜨고 ,기존에 카톡을 애용하던 친한 사람들로부터 엽서같은 편지를 받게 되었다.  카톡은 사진을 주고받거나 긴 사연을 글로 보낼 수 있어  친한 사람들끼리 정다움을 나눌 수 있는  정말 유익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사하구에 살 때 주원식 선배님은 나와의 인연이 각별하여 언제나 형님처럼 따랐었는데 그 형님으로부터 뜻밖에 카톡으로 편지를 받았다.

'우째 지내노 ? 나는 요즈음 산만 열심히 찾아다닌다.' 

 반갑고도 고마운 편지에 답장을 보냈더니 1박 2일 산행얘기가 나왔다.

 

 마침내 형님과 지난 월요일(21일) 경남 거창에서 조우하였다. 지목한 산은 능선으로 이어진 금원산과 기백산인데 첫날은  함양군 안의면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름날 일찍 출발하여 6시간 안에 두 산을 접수한 뒤 하산하는 일정이었다.

안의면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니 황금빛 들을 지난다.  벼를 말리느라 곳곳에 도로의 한 차선이 봉쇄되어 기사의 뒷모습이 자주 불편해 보였다.

 

오후 4시 경 안의면에 도착해 먼저 여관을 잡고는 형님과 나는 안의면을 어슬렁거렸다. 약초시장에 들렀더니 목이 긴 유리병에 약초효소를 만들어 진열한 것이 진기했다. 황수오와 백수오,산삼과 더덕과 잔대 등 심마니가 지키는 가게에 들러 약초의 기능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듣고 나왔다. 안의면의 갈비찜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저녁 어스름 ,형님과 나는 한옥으로 지어진 식당을 찾아가 갈비찜(1인분 2만원)과 소주 한 병,맥주 한 병을 시켰다. 최근에 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낸 형님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 갈비살이 부드럽고 절인 양념맛이 과연 일품이었다.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산의 허리춤까지 깊숙히 들어갔다. 7시 10분 ,산행은 수망령에서 시작되었다. 좌측 능선을 오르면 황석산이고 우측 능선을 타면 금원산이다.  금원산 정상까지 고지 400여 미터를 오르는데 형님은 자주 쉬어간다.  산에는 신갈나무와 단풍나무가 많아 온통  불타는 가을색을 연출했다.  기백산 정상(1,357m)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10분.

' 아- 좋다.'

청명한 하늘과 눈아래 펼쳐진 가을색 산을 향해 형님과 나는 번갈아 가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깁밥으로 점심을 마친 뒤 하산을 시작한 시각은 12시 10분. 용추계곡에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 4키로미터 하산길을 1시간 30분만에 주파한 것이다. 형님은 하산할 때 뒷모습이 그야말로 날다람쥐였다. 오름길에 자주 숨을 헐떡이던 것과 전연 딴판의 모습이다.

이유는 오직 하나,튼튼한 무릎이었다. 형님은 통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무릎을 굽혀도 뼈가 도드라지지 않는 특히한 왕골이다.

 

함양으로 향하는 택시안에서 형님은 기사에게 고함치듯 말한다.

'살라꼬 산에 댕기요. 오래 살라꼬...'

내년에 칠순인 형님은 모레 38회 동기들과 태국여행을 떠난단다. 일념으로 암을 극복한 그 형님이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며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 형님,100살까지 사이소."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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