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린더 헤드를 벗기느라 배가 잠시 표박을 하는 동안 아래층에 있는 선원들의 식당에 들러 그들과 커피를 함께 마시며 잠시 환담했습니다. 눈이 매섭게 생긴 와카(Waqa)는 나이가 서른세 살에 아이가 셋인 가장이었습니다. 빌리지 출신의 원주민들은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주고받는 말이 너는 몇 살이냐,결혼은 했느냐 하는 따위의 신변사항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으로 와카의 입에서 캡틴 리(李)의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는 캡틴 리가 자기 부락의 원주민 여자와 한때 동거를 했으며 그 사이에 열네 살 먹은 딸이 있다는 얘기를 해 주었던 것입니다.
장난꾸러기 죠세바도, 어느 날 아침 식사시간에, 배가 수바에 입항하면 자기가 사는 부락에 함께 놀러가지 않겠느냐고 내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배가 항구에 입항하면 원주민 선원들은 하역이 끝나는 대로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 고향으로 가 하루 반나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오는데, 그때 나이로 사십대 후반이었던 캡틴 리도 십중팔구 와카의 초대에 응했다가 원주민 처녀와 만리장성을 쌓은 듯 했습니다.
부락의 추장은 캡틴에게 양고나(카바라는 식물의 칡뿌리 같이 생긴 뿌리를 말려 만든 분말을 삼베 같은 것에 담아 물속에서 짜 만든 , 막걸리 같은 모양의 술) 라는 술을 빌로(야자식물을 잘라서 만든 그릇)에 담아 대접했을 겁니다. 술은 엄격히 장유유서의 원칙을 따라 나눠 마신다고 했습니다. 이 술에는 진정작용이 있어 밤새도록 박수치며 노래하며 마셔대는데 아침이면 모두 다 쓰러진다고도 했습니다.
이(李) 선장은 원주민 처녀를 만나러 자주 그 부락을 드나들었던 모양입니다. 아기가 생긴 뒤로는 처갓집 드나들 듯 했을 겁니다. 선원들이 싸들고 가는 생선고기 말고도 선장이랍시고 그들이 구경하기 힘든 먹거리들도 적잖이 사다 날랐을 겁니다. 그런 그가 어린 딸을 내버려둔 채 ,그 마을에 발길을 끊은 것은 십중팔구 감당하기 힘든 그 부락의 무소유 개념이었을 겁니다. 돈이든 양식이든 부락민들은 도대체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인 골상을 닮은 그 소녀가 어쩌다 제 애비를 만나러 부두에 나타나면 인근의 입항중인 한국선장들은 모두 다 제 딸인 양 귀여워하며 핏줄 역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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