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기쁜 소식

알라스카김 2016. 3. 22. 17:04


 

       오십 중반의 나이에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실업자로 지내던 대학후배 H가 자진하여

 전화를 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옛 얘기다.

 젊어 한때 원양어선 선장노릇을 하다 원양산업이 쇠퇴의 길을 걷자 그는 모교인 대학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는 마누라의 월급을 믿고 무작정 하선한 뒤 육지에서의 삶을 찾아 무중항해(霧中航海)를 하고 있었다 나 역시 개인사업을 한답시고 부산의 중앙동에 사무실을 내고 영업직원을 구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된 데는 그가 마침 모교의 해양문학회란 써클의 후배였고 , 남미 어장의 파시(破市)때 내가 모 원양회사의 수산부장으로 출장을 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항에서 선후배로 조우하여 함께 술잔을 나누었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9, IMF의 여파로  회사문을 닫기까지 그는 나의 부하직원으로 정겨운 후배로 약 5년간 함께 동고동락했었다. 다만 그에게 빚이 있다면 회사가 파산지경에 이르러 끝내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 동안 부도난 수표처럼 경제적으로 쓸모없는 신세였던 나는 자위의 방편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떠다녔던 북태평양의 바다와 출장으로 접하게 된 숱한 외국풍물을 배경으로 별처럼 명멸했던 기억들을 들추어 가며.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을 보내던 중 우연히 부산일보 신춘문예 사고(社告)를  접하게 되었고, 그 결과 나의 졸고(拙稿)2007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대상인 해양소설부문 초대 수상작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전혀 뜻밖이었고 작품의 완성도란 면에서도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신춘문예 당선은 내게 새로운 인생목표를 갖게 한 중대한 사건이었다. 모교의 해양문학회 후배들이 주선한 축하모임에 H가 참석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 후 H를 만나, 그가 삶의 형태에 스스로 지쳐 푸념을 늘어놓기라도 하면, 나는 그에게 글쓰기를 권유했었다.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던 그가  나의 등단으로부터 거의 1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오늘에서야 마침내 해양소설로 부일 해양문학상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등용문조차도 똑 같은 문학 후배로서 말이다. 

               

마치 결혼한 딸자식이 귀여운 손녀를 낳았다는 소식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 이 어찌 기쁜 소식이 아니겠는가.


2016. 0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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