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도(藥山島 또는 助藥島)는 보성군 조성면 한실부락에서 어산재(魚山齋)를 짓고 사시는 작가 정 형남 선생님의 고향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났던 선생님은 객지를 떠돌며 불행했던 한국 근대사와 한 많은 가족사의 멍에를 평생 가슴에 품고 사셨다. 그러므로 약산도를 비롯한 인근 남도의 섬들은 연작 장편소설 '남도(南道)'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의 산실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지난겨울 어산재를 찾았던 나는 선생님께 약산도 여행을 제안했었다. 섬 탐방에 대한 흥미에 작가의 가족사에 대한 내력을 캐보고 싶은 욕구가 더했기 때문이었다.
4월 30일 오전 11시 경. 보성에서 강진까지 버스를 타고 오신 선생님을 내 차로 모시고 마량면과 잇닿은 고금대교를 향했다.
약산대교가 가까워지자 고려청자박물관 입간판이 나타났다. 조금 더 지나자 선생님은 이 충무공 유적지를 둘러보고 가자시며 좌측 길을 가리켰다.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지다. 노량해전에서 왜병의 유탄에 숨진 장군의 시신을 우수영 본영인 이곳에 모셔와 40일 동안 봉안하였다가 고향인 아산으로 옮겼다는 기록을 읽는다.
망루가 선 동산의 왼편, 좁은 바다는 조선 군선들이 몸을 숨겼던 요새였고 오른쪽은 약산도에 주둔했던 명군의 본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산초등학교에서 10리길을 걸어 천동나루에서 배를 타고 여기로 소풍왔제. 섬 사이 수로는 물살이 세어 노젓는 배가 직선으로는 못왔어.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사공일이 판옥선 격군들의 노동과 다름 없었제. 오가는 소풍길이 하루 왼종일이었어.
그 말끝에 선생님은 이곳 어디에 왜군들의 화살이 집중된 살곶이 있었다고 전한다.
사즉생( 死即生). 두려움을 용기로 전환시킨 불퇴전의 리더쉽.
충무공의 존영을 뵈며 돌아가면 난중일기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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