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약산도 여행-5(마량)

알라스카김 2016. 5. 12. 16:06














 차 병호씨 댁으로 돌아 와 저녁 일정을 의논하던 중 사촌형님이 마량행을 강권하였다.


-거 가면 좋지라.내 단골식당에 가면 만원 주고 고기를 원없이 먹거등. 토요일이라 마침 마량축제여.

 가수들 노래부르고 좋은 구경할 거여. 가세 가. 거서 저녁 먹고 오세.


돼지고기를 못자시는 선생님이나 가로등 없는 밤길운전이 걱정인 운전기사나 허리에 밴드를 차고 계시는

차씨나 모두 내키지 않은 눈치였건만 사촌 형님은 막무가내였다.


고금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마량은 인근 섬으로 오가는 여객선들로 붐볐다.  고려시대에는 강진 인근의 가마에서 구워낸 고려청자를 개성까지 실어보낸 뱃길의 시작이었고, 조선시대엔 이 포구에서 제주도 말을 한양으로 실어날랐다. 말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 해서 마량(馬良)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 야- 좋네. 여게가 한국의 나폴리여.


 여권도 없다는 선생님이 불쑥 나폴리 바다풍경을 끌어왔다.

 상쾌한 바닷바람도 석양에 물든 하얀 등대의 멋진 배경이었다.

 원목으로 세워 만든 미국의 피셔맨 터미널(Fishermen terminal) 처럼 바다로 끌어낸 넓은 석축 위로 간이 음식점과 상설공연장과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과연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돔 종류인 어름치를 썰어낸 회를 안주로 또 다시 막걸리와 소주가 등장했다. 점심때부터 선생님은 막걸리로 줄창 배를 채웠으나 성실한 운전기사인 나는 술잔 앞에서  종일 염불만 외웠다.  

그런 나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촌형님은 또 다시 저녁을 먹고 가자며 부두 뒤편의 어느 식당으로 일행을이끌었다. 사위는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육개장을 시켜놓고 사촌형님은 또 다시 복분자술을 청했다. 더욱  며느리와 함께 일하던 주인여자를 부득부득 곁에 앉히더니 복분자술을 거듭 두 잔이나 권한다. 그제서야  마량을 향한 사촌형님의 간절함이 식당의 이 여인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약산도를 주름잡는 사촌형님의 넉넉한 오지랖이  정인(情人)을 향한 애타는 사랑인지... 그도 아니면  고향지킴이의 거룩한 집착인지 선뜻 분별이 안된다.


천동마을로 돌아 온 시각이 밤 아홉 시 무렵이었다.


 미리 차려놓은 듯 조그만 술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안주인은 인근 친척집의 제사에 다니러 가셨다 한다. 이 술상은 하루 종일 술 앞에서 염불만 왼 나를 위해 베푼 것이나 다름없다. 곧 이어 주인장이 유리병에 담긴 약술을 꺼내왔다. 그 술 한 잔에 벽에 기대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던 사촌형님이 눈동자를 빛내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약술의 효능을 그 당장 목격한 셈이다. 약술이란 다래(씨방)가 달린 해어화 줄기를 통째로 술에 담근 것이었다.그러므로 나는 술이름을 해어주(解語酒)라 지었다. 말귀를 알아먹는,말을 할 줄 아는 술이란 뜻이다. 왠고하니, 약술을 서로 주고 받으며,세 사람의 중늙은이들이  새벽 두 시가 다 되도록  약산도의 풍물과 그 품에서 피고 진  숱한 목숨들에 대한 추억들을 주섬주섬 되새김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시대때  호남 각지에서 발발한 농민투쟁의 정신은 해방 후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사상에 동화되었던 듯싶다.  아버지 형제들이 모두 좌익이란 올무에 걸려 일찍 세상을 버렸고 생부는 여직도 행방불명인 채 징한 세월의 강을 건너오신 선생님 또한, 연좌제에 묶여 오래도록 홀로코스트(Holocaust)의 비애를  되씹었던 것이다. 6.25 전쟁의 아수라장 속에서,선생님은 이 모두가 소작인들과 이승만 정권에 빌붙었던 친일파 무리들의 망나니짓이었다고 회고했다. 서로 빨갱이라 손짓하며 연명했던 섬주민들은, 한 세대가 훌쩍 지난 지금, 원수지간끼리  서로 사돈을 맺으며 살아 간다, 그러므로 피로 얼룩진 역사의 기록은 어느덧 망각의 늪으로 아물아물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약산도 여행의 파장은 허리가 아파  참다 못한 주인장이 농염한 복분자술을 투입하면서 급박하게 마무리 되고 있었다. 복분자술의 횡포는  금일도 여행마저 무산시키고 말았다.


-가거들랑, 술에 담겄다가 애끼 자시소. 남자 힘쓰는데는 이것이 제일잉께.


다음 날 아침,사촌 형님은 약산의 명물 삼지구엽초를 몇 뿌리 우리들 손에 쥐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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