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파노라마
시내를 벗어나 낙동강 지류인 서천을 따라 가다가 머리를 들면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소백산을 넘어간다. 길가엔 코스모스 피어나고 군데군데 서원과 서당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조선시대 영주에는 국립 중등교육기관인 향교가 3곳, 선현들의 제사와 인재를 양성하는 사립 중등교육기관인 서원이 20곳, 향촌 사회에 생활근거를 두고 백성들이 주체가 된 사설 초등교육기관인 서당이 22곳 있었으며 많은 명현들을 배출 하였으니, 과히 여기를 선비의 고장이라고 부른다. 선비를 칭하는 개념 및 사상과 정신은 시대적 변천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하고 있으나 그 덕목과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선비란 행동하는 양심과 정의를 실천하는 품성을 갖추고 도덕적인 인격을 갖춘 지성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소백산 줄기를 바라보며 들길을 따라 20여분 달리면 소수서원과 향교 길이다. 소수서원은 1543년 우리나라 최초로 창건된 백운동 서원이 후에 나라의 지원으로‘소수서원’이란 이름을 하사받고 공인 된 사립 고등교육 기관이 되었다. 아마 여기 소수서원 앞길에서 1549년 5월에 퇴계 이황선생도 3박 4일의 소백산 등정을 위한 산행 짐들을 챙겼으리라. 오늘은 부석사 가는 날, 다음번 여정엔 소수서원을 둘러보고 소백산 자락길과 죽계구곡을 따라 소백산을 오를 것을 다짐하며 과수원 길을 지난다. 봄에는 마치 사박사박 방금 내린 함박눈처럼 순백의 사과꽃이 뒤덮이고 가을이면 붉게 물든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시골길. 이 세상에 많은 종류의 과일이 있지만 사과만큼 사랑받는 과일이 있을까. 예전에 능금이라고 불렀던 사과는 온대성 과수로서 열대지방에는 결실이 안 된다. 사과가 결실을 하기 위해서는 저온과 동면 기간이 필요하며, 제사에 쓰이는 사과는 굵고 붉은 것들이어야 하는데 소백산 자락에서 생산되는 영주사과 만큼 맛과 빛깔이 고운 것이 있을까.
아카시아 꽃이 활짝 핀 동구 밭 과수원 길의 동요를 흥얼거리면 어느덧 부석사 주차장에 닿는다. 안개처럼 솟구치는 분수와 주룩주룩 넘쳐흐르는 폭포수 앞에서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고뇌를 씻고 욕심과 어리석음을 털어내듯 한발 한발 걷는다. 길가에 늘어서서 산야초 바구니를 앞에 둔 촌부들의 배웅과 함께 극락행 승차권을 받아 들면, 이제 우리는 대승이라는 큰 수레를 타고 이 사바세계에서 수억 겁 멀리 있다는 극락정토로 가는 것이다.
사찰· 절은 왜 산속에 많은가, 인도나 중국같이 우리나라에도 평지에 자리 잡은 사찰이 많이 있으나 수행과 기도 도량의 기능과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수도생활에 적합하도록 산속 명당길지에 지어졌으며, 더욱이 조선시대에 억불정책 때문에 산속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한편 사찰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연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깨달음을 본받아 중생의 고통을 해탈로 승화시키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절을 찾은 우리는 해탈을 위해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와 함께 진리의 세계인 법문(法門)을 들으며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첫 번째 문이 일주문이다. 일직선 기둥 삼칸 위에 지붕을 얹은 이 문은 한마음을 의미하며 부산히 흩어 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인 것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서 인과응보의 도리를 믿어야 하며, ‘살생하지 말라 ’로 시작하는 10가지 선을 지키고 행하여야 하며,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구하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굳건히 하라는 의미이다.
일주문 문턱을 넘어서면 은행나무 숲길이 길게 늘어져 있다. 가을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파아란, 빠알간, 그리고 노오란 색일 것이다. 노랗게 물든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빛깔은 은행잎이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 소중하게 간직했던 경험을 생각해 본다. 위에서 아래로 노랗게 색이 변하면서 이삼일이면 모든 잎이 동시에 사라지는 은행나무 밑에는 낙엽이 져야할 때 미련 없이 떨어진 노란 잎들이 수북이 쌓이게 된다. 소수서원에도 아주 오랜 500년 고목이 두 그루 있으며, 마의태자가 지팡이를 꽂아 일천년을 자랐다는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도 유명하다.
은행나무 숲길을 오르다가 왼편에 일천년을 지켜 온 커다란 돌기둥 앞에 발길을 멈춘다. 이것은 절에서 불교 의식 때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며, 절 아랫마을에 행사를 알리는 목적으로‘당’이라는 깃발을 달기 위한 당간지주이다.
잠깐 숨을 고르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두 번째 문인‘천왕문’을 지난다.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 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린 빨간 입 등 무시무시하게 생긴 얼굴에 갑옷을 걸치고,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발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신음하는 형상을 취하고, 청정도량인 사찰의 동서남북에서 악귀를 막아주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미 일주문을 들어와 극락 가는 길로 들어선 중생을 위하여, 이 문은 폭포수와 분수에 다 씻지 못한 번뇌와 힘들게 계단 길을 오르면서 생긴 좌절의 생각을 제거하며 일심 정진할 것을 독려하기 위해 거기에 서있는 것이다.
다시 떨리는 다리와 흔들리던 마음을 가다듬고 계단을 오르면, 잠시 쉬어 오르라는 듯 큰 북이 걸린 범종각 뜰이 나온다. 이 뜰에는 동쪽과 서쪽에 침묵하듯 삼층 쌍 탑이 서 있다. 사찰에서 탑이란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문이 없고 들어가서 머물 수 있는 공간도 없으므로 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삶의 애증 속에 사무쳐 있는 중생의 집이 아닌 번뇌와 정열과 사랑으로 다 태워버린 열반의 집이요, 부처님의 상징인 사리를 모신 집이다.
탑 주변의 여러 가지 꽃나무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꽃이 있다. 4월 초파일 전후로 피는 이 꽃은 꽃의 생김새가 마치 부처님의 머리 모양처럼 꼬불꼬불하게 생겨 불두화라고 부른다. 처음 필 때는 연초록 꽃 색이지만 만개할 때는 눈부시게 하얀 꽃이 되고, 꽃이 질 무렵에는 보라색으로 꽃잎이 변한다. 꽃 색이 이렇게 여러 가지로 변하는 것부터가 제행무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꽃 중에 수국이 있지만, 수국은 늦여름부터 피는 꽃이다.
감로수 한잔에 땀을 식히고 커다란 북이 둥실 떠오른 듯한 ‘봉황산 부석사’ 현판이 걸린 범종각 문으로 한 계단을 오른다. 봉황산은 태백산 줄기가 소백산으로 뻗어 내리다가 산기운을 타고 자리 잡은 곳이며 영주 시가지로 이어진다. 범종각에 있는 큰 북은 법고라 하며 불법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큰 북은 암소와 수소의 가죽을 붙여야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하며, 짐승들을 비롯한 땅위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나무로 된 북채로 마음 심(心)을 그리면서 ‘퉁 투우 퉁퉁’울려 퍼진다. 뭉게구름 무늬의 넓은 운판은 공중을 떠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는 영혼들을 천도한다고 하며, 나무로 된 긴 물고기 모양의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이끌어 주며, 모든 중생이 깨우침을 이루도록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열라는 듯 ‘더응~’긴 여운을 남기며 멀리 퍼져가는 범종은 건너편 종각에 있다.
돌계단을 하나씩 세어가며 오르면 세 번째 문이 불이(不二)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다. 불이의 진리로써 모든 번뇌를 벗어 버리면 해탈을 이룬다는 해탈문이라 하며 지상과 허공중의 세계, 번뇌와 깨달음의 세계를 구분 짓는 것으로 부석사에서는 극락을 의미하는 ‘안양문’이란 현판을 걸었다. 안양문을 오르면 법당 앞에 아주 멋진 예술품인 석등을 만난다. 석등이 켜지면 풍경소리에 젖은 불빛이 바람을 타고 한 찰나에 무변광대한 우주의 바다로 뻗어 나간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내 마음의 우주, 그 번뇌의 바다에 석등은 등대가 되어, 어둡고 깜깜한 중생의 마음을 부처님의 깨달은 진리로 비추어서 불성을 밝혀 준다.
석등이 비쳐주는 대로 법당을 바라보면 정사각형의 널빤지에 네 글자를 세로 두 줄로 쓴‘無量壽殿(무량수전)’현판이 있다. 이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우리나라 사찰 편액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배흘림기둥이 주는 조화가 너무나 의젓하고 너그러운 자태에 감탄하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을 느꼈다는 어느 미학가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단아하고 엄숙함을 느낄 수 있다.
무량수전 문을 열면 넓은 바다와 같이 펼쳐진 마루를 살며시 돌아 왼편 서쪽 방향으로 금빛의 화려한 무량수불상이 있다. 흙으로 빚어 앉아 있는 모습이라 하여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라고 한다. 석가모니불, 석가세존, 아미타여래, 무량수불, 비로자나불, 미륵불,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등 불교에 접근하다 보면 너무나 많은 부처와 보살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삼천의 부처가 있다고 하며, 이중 육신을 갖추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실제로 이 세상에서 삶을 다하고 저승으로 간 부처는 석가모니뿐이며 나머지 부처들은 석가가 해탈해서 찾아낸 깊은 마음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부처· 붓다· 불· 여래· 세존 모두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존칭이다. 수많은 부처 가운데 근본이 되고 고통의 근원을 깨달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이 대웅전이고, 아미타불에 귀의 한다는 뜻인 ‘나무아미타불’에서 많이 들어 본 아미타여래인 무량수불을 모신 곳이 무량수전이며, 명산에 있는 비로봉의 어원과 연관되는 우주에 충만한 빛, 광명을 뜻하는 비로자나부처를 본전불로 모신 곳이 대적광전이다.
광명과 수명과 공덕의 상징이며, 극락에 갈 수 있도록 해주는 부처님이신 무량수불은 영원한 생명, 헤아릴 수없는 광명의 의미로서 서방의 극락정토를 관장하신다. 법당에서 우러러보면 눈앞에 있는 것 같지만 머나먼 서방정토에 계시며, 그 거룩한 모습만이 부석사 소조아미타불좌상으로 현현하고 있는 것이다.
절에 가면 여성 신도를 보살이라 하고 남성 신도를 처사라고 불러서 보살님 하면 어쩐지 아줌마 신도의 느낌이 있지만, 보살은 지혜인 깨달음을 구하는 자, 깨달음을 가진 자, 깨달음이 확정된 자 등의 의미가 있으며, 오랜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깨달음을 충분히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로병사가 반복되는 윤회의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성불을 미룬 존재들이다.
법당이란 흔히 불상을 모신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법당은 진리로 가득 채워진 집이란 뜻으로, ‘그렇게 되게끔 되어 있는 것’ 그것이 법이요 그와 같은 깨달음을 깨우쳐 주는 곳이다. 본존불을 모시고 사찰의 중심 건물로써 법문을 설하는 장소이며 법회의식을 주관하는 장소인 본전과 보살을 모신 불전을 포함하여 신앙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모든 전과 각이 포함된다. 전(殿)에는 불교 교리에 입각하여 신앙의 대상이 되는 부처나 보살이 모셔져 있고, 각(閣)에는 불교의 입장에서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지만 민간신앙을 수용하는 측면에서 산신이나 칠성신 등을 모신 곳이다.
절에 와서는 절을 많이 하여야 하고, 절을 많이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부석사는 1,300년 전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상대사가 태백산 자락인 이곳에 절터를 잡을 때, 이단의 무리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유학시절 그를 흠모하던 선묘낭자가 용이 되어 서쪽에 있는 큰 바위를 세 번이나 들어 올렸다고 한다. 이 바위를 뜬 돌 ‘부석’이라 하여 절의 이름을 ‘부석사’라고 지었으며,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께서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친필로‘浮石寺(부석사)’한문 현판을 안양루에 걸었다. 한편 선묘낭자의 넋은 용이 되어 무량수전 아미타불 불상 아래에 머리를 두고 절 마당 석등 아래에 꼬리를 드리우고 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실을 넣어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막힌 데가 없으니 정말 신기하다”는 기록이 있다.
끝없는 대자대비로 나의 절 받으시고
가피의 힘을 가득 주소서,
원컨대 법계의 뭇 생명이 함께
너와 나 모두가 부처의 길로 이루어지이다.
무량수전 돌계단을 밝고 내려서며 청아하고 낭랑한 독경소리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불교의 경전 전체를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데, 많은 경전 중 부처님에 대해서는 법화경, 자비에 대해서는 화엄경, 해탈에 대해서는 금강경, 인간의 정신과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인식하는 방법을 풀어 나가는 것이 반야심경이며 관세음보살의 원력과 중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발원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이 천수경이다. 일반적으로 불교 행사 중에 제일 많이 읽혀지고 있는 경이 반야심경과 천수경이다. 목탁은 앞부분의 긴 입과 옆의 둥근 두 눈을 가진 물고기 모양으로서, 잠을 자지 않는 물고기를 연상하며, 불자로 하여금 더욱 열심히 수행 정진할 것을 주문한다. 속을 비워 울리는 소리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삼독을 버린 공한 마음이 되어 모든 중생을 받아들이고, 사리사욕과 허망 됨이 없는 공한 소리로써 중생의 업장을 녹이고 미혹됨을 깨우쳐 준다.
은은한 불경 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숲길을 따라 무량수전 뒷길을 오르면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부처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화엄종지를 꽃피우고 장엄한 화엄세계를 보여주며 극락정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부석사를 창건하신 의상대사를 기리는 조사당이 있다. 조사당 추녀 밑에는 봄에 노란 꽃을 피우며 뿌리와 꽃이 효험 있는 약재로 쓰인다는 골담초 한그루가 사시사철 눈비를 맞지 않고 자라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한 후 도를 깨치고 서역 천축국(인도)으로 떠날 때 지팡이를 꽂으면서 ‘지팡이에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날 터이니 이 나무가 죽지 않으면 나도 죽지 않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나무가 바로 선비화(禪扉花)다.
조사당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무량수전 앞뜰을 지나면서, 산사에 올 때마다 알듯 말듯한 작은 집 삼성각을 들러본다. 마음을 밝히고 해탈을 구할 것을 가르치는 출세간 적 스승이신 부처님 보다는 인간을 보살피고 재물을 주는 산신, 지식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 복락을 주는 독성신을 모신 곳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전부터 민중 속에서 함께 했었던 여러 토속신들은 현대화와 미신타파의 영향으로 이제는 전래풍습 정도로만 인식되고, 이 세 신만이 불교적으로 윤색되어 각(閣)이라는 건물 속에서 구복을 빌고 있다. 불교에 있어서 신이란, 인간과 다른 삶의 형태로서 전생의 선업을 행한 결과 ‘신’이라는 존재가 되었을 뿐, 그들 역시 그 선업을 다하면 다시 윤회하는 존재라고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믿으며, 어느 곳을 향해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인가.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은 욕망을 배제하고 인과응보를 믿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밝혀 뭇 생명을 사랑하고 구제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것이리라.
운무를 휘감고 용틀임하듯 끝없이 이어진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산색이 바뀌어 갈 즈음 안양루에 올라서서 보일 듯 말 듯 부처를 찾는다. 불심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마음을 비우고 사방을 눈여겨보면 20개의 좌불을 볼 수 있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사이의 공간이 앉아 있는 부처의 형상이다. 안양이란 말 자체가 불교에선 극락을 의미 하므로 우리는 극락정토인 안양루에서 여러 부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안양루 너머 먼 산을 바라보면 산위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데 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 대자연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가 어디에 또 있을까.
글 쓴이 정태환. (다음 블로그 -Thawn 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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