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월 4일(금). 부산행 버스에서 정형남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낼 일없으면 보성으로 놀러와.
(부산의 일이란 오늘 밤으로 끝나고 낼은 토요일이다)
-뭔 좋은 일 있습니까?
-으응- 부산서 제자들이 온다구먼.
( 그러구 보니 나도 제자다. 보성들렀다 하룻밤 자고 나주로 가면 되겠구나)
부산서 토욜 낮 목포행 버스에 올라, 광양-벌교-조성면 코스로 오후 4시 반에 닿는다.
나보다 2시간 늦게 도착한, 승용차 한 대로 달려온 제자들이란 모두 여자였다.
보성 CC 숙소에 여자들의 방을 잡은 뒤, 7명이 승용차 한 대로 예당부락의 개펄로 간다.
개펄까지 스며든 산맥 위로 붉은 노을이 구름을 희롱하므로 누군가 그 풍경을 담느라
남녀가 얽힌 차 안이 아주 민망했다.
길이 한적하였고 방조제 안의 너른 들이 무심해 천만다행이었다. .
구겨진 옷매무새를 훔치며 일행이 남해수산 횟집으로 들어선다.
대뜸 '서대 초회무침'이란 메뉴가 눈에 꽂힌다.
알고보니 오늘은, 샘께 우편으로 미리 보낸 틈틈히 쓴 원고들의 품평회를 갖는 자리다.
끝자락에 여자들에게 샘의 제자된 내력을 설명한 나는,심심하여 몰래 횟값을 결산했다.
그리고 ...숙소까지 이어진 토욜밤의 축제는 남녀가 유별하여 특별한 기억은 없다.
2.
일요일 오전 8시. 여자들이 어산재(魚山齋)로 몰려왔다.
새벽무렵 어산재 사랑방에서 혼자 골아떨어진 나는 마당의 소란에 무거운 눈을 뜬다.
거실에 모여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에도 여자들은 저들끼리 다음 행선지를 정한 듯 엉덩이를 들썩였지만 제자들과 이별이 아쉬운 샘은 딴 궁리가 있는듯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썩을 놈! 싸게 올라와 -잉?
샘의 전속 기사인 김형진 아우는 조성역전 노래방 주인인데 어젠 술자리 선약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다.
샘이 잡은 방향은 장흥 정남진 아래 회진면이다.
해장겸 점심으로 제자들에게 이곳 명물인 '된장물회'를 먹이고 싶었던 것이다.
된장을 푼 육수에 열무김치와 몇 가지 야채를 채썰고 광어나 가자미 등 살이 부드러운 생선을 넣어 초를 친
이곳 물회는 밥과 함께 섞어 먹으면 술 안주로 그만이었다.
샘은 주야장천 막걸리였고 나는 한 잔을 세 번 베어 마시는 소주였다.
3.
회진면에서 제자들과 헤어진 샘은 나주행 버스에 나를 태우려고 강진으로 차를 돌렸다.
그러다가 취흥이 돋았는지 갑자기,
- 어...마량으로 가. 그게 가서 내가 전복 사 줄테닝께.
마량에서 연육교 두 개를 지나면 샘의 고향인 조약도가 아닌가.
폰이 삥 삥 울려 열어보니 물회집에서 찍은 사진이 몇 장 카톡에 떴다.
담배와 소주에다 문단등단이란 공통점에 ,샘 왈,간밤에 둘이 서로 코가 빠졌다는 최oo씨다.
마음 한 구석 미진한 추억이 동했는가 보다. 짧게 답장을 보낸다.
-마량에 왔습니다.여게가 나폴리라던 샘의 기억을 되살립니다. 가는 길에 샘은 조약도에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흔들어 깨웁니다. 잠시 후면 또 다른 축제가 예상됩니다. 저는 샘곁에서 한량없는 자유를 느낍니다. 날개가 있다면 새처럼 하늘에 다녀오고 싶네요. 자유를 위해 건배!
약산면에서 칠순이 넘은 헌헌장부 세 명이 달려왔다. 일면식이 있는 정석철,차병호씨를 보자 내입에서 형님이란 호칭이 서슴없이 튀어 나왔다. 얼굴에 살이 좀 부족한 분은 김성호씨로 연세가 고만고만한 약산도 토박이시란다. 모두 조약도찌끼미들이다.
바깥은 폭염으로 쟁쟁거렸고 ,에어컨이 있는 실내 또한 너댓 시간 술꽃이 만발하여 뜨거웠다.
헤어질 시간, 병호 형님이 한사코 자기 집에 들렀다 가란다.
그는 방문객들에게 조약도 일등품 김 한 축씩을 건네더만, 내겐 특별히 삼지구엽초 담금술 한 병을 쥐어주신다.
- 이게 힘쓰는 덴 제일이여...
샘은 고향지기련만, 난 무슨 갸륵한 일로 보약처럼 아끼는 술의 은전(恩典)을 받는가...
샘은 고향방문이 도깨비짓이라 하셨지만 ,지금 와서 나는 여름날의 축제라고 제목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