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送舊迎新 - 외딴섬의 파도소리

알라스카김 2019. 12. 26. 13:38


 

  늦은 아침이다.  

  어제는 성탄절 예배에 참석한 새 신자들과 반갑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곁에 섰던 누군가가 그들에게 대뜸 글을 쓰는 작가라며 나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올 7월에 갑자기 직장을 관둔 제 일의 이유가 더 늙기 전에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였기는 해도, 해가 저물도록 여태 나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생각만으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새삼 탄식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재능이 부족한 것은 피와 땀으로 메꾼다지만 그동안 무기력했던 것은 도대체 왜일까?  그래서 자문해 보았다. 

 

  자신을 방기(放棄)케 한 자의 정체는  정작 부끄러움이란 파도를 몰고 온 바람이었다. 늦었지만 파도만 보지 않고 그 바람을 보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전업 작가라면 앞으로의 생계를 해결할 일정한 소득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푼돈일지언정 내겐 아무런 보장이 없다.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생의 결과 그동안 모아둔 재산도 여생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가난하면 어떠리,물질의 노예는 결코 되지 말자  다짐했지만, 그 城은 작은 순풍에도 무너지는 모래성이었다.


  더욱 걱정인 것은 칩거생활을 하게 되면서 느끼는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외딴 섬처럼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이는 스스로 의롭다 자처하며,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래서 용납할 수 없다는 오만과 교만이 자초한 외로움과 쓸쓸함이다. 내가 조금만 참고 양보하면 그만인 일임에도 그냥 넘기지 못해 무시로 따지고 시비하고 마찰을 일으키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무아지경의 자연인처럼 독야청청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것이, 결국은 위선과 자기모순에 사로잡힌 한낱 소인배였음을 지금 이 시간 깊이 뉘우치는 것이다.

 

  己亥年이 가고 庚子年이 오기 전에, 나는 다시 결단하련다. 외딴섬에 몰아치는 저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진정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

  “만약 네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너와 생각이 다른 그 사람을 바꾸어 보려고, 또는 바꾸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곧 사랑이다.” - 크리스마스 특집영화 ‘ Me before You ’의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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