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을 누군가 조붓한 길이라고 쓴 기억이 났다. 웬 산에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떡갈 나무와 사스레 나무, 동백나무 들이 서로 껴안고 있었다. 아내는 화순의 만연산 둘레길에서 느꼈던 진한 솔향의 감동을 잊지 못해 숲의 향기를 자꾸 탓했다.
10여 분 남짓 걸었을까? 삼거리 오솔길에서 달마산 정상으로 가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달마산은 낮다(489M).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와도 2시간이면 족하리라. 땀을 흘려야 머리가 개운할 것이란 생각에 무턱대고 오른편 오름길을 택했다.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진 숲길 오르막이어서 조금씩 뒤처지는 아내의 걸음을 다만 나이탓으로 돌렸다. 헬기장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씩씩한 남편이었다.
핼기장에 닿으니 ,정상까지 0.8km 거리에 낙석주의,추락주위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 부부는 나이도 잊은 채 '고-까이껏'하면서 위를 향했다. 아차! 경사가 급한 바위길이 아닌가. 스무 발도 채 못가 나는 숨이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정상에 닿으니 오후 1시 30분. 헬기장에서 시작된 0.8키로 행군에 무려 40분이 걸린 셈이다. 게다가 나는 아내보다 3-4분이나 늦었고 거의 실신상태였던 것이다. 수영으로 단련한 체력(하체근력)이 고지등반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거니와, 가벼운 조식으로 인해 갑자기 혈당이 떨어진 것도 그 원인이었다.
달마산 정상을 '불썬봉'이라 불렀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덜마산 정상에서 옛날에 봉화를 올렸다는 것이다. 바다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산 능선이 공룡의 등줄기처럼 이어져 남해의 금강산이란 별칭을 얻었다는데, 기진맥진한 나는 그 모습을 제대로 포착할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려 올라온 길로는 도무지 하산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검찰개혁이란 신념으로 '조국수호'를 외치다 여론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이 정부는 무턱대고 정상에 오른 지금의 내 꼴과 영락없이 닮았다. 그러므로 국민을 설득하든지 잘못된 인사를 번복하든지,양자택일 대통령의 용단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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