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최부(崔溥)선생의 묘, 그 뒷 이야기

알라스카김 2021. 5. 29. 08:33

 내 블로그의 금남 최부의 묘란 글을 읽고 ,광주에 계시는 이한규 선생(들꽃 도사관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최부 선생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려고 하니, 5월 26일 최부선생의 묘에 함께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영상녹화를 위해 올해 82세 청년 윤병훼 선생님이 직접 차를 운전해 이 선생과 함께 오셨다. 윤 선생님은 디지털 편집기사 1급 자격증을 지니신 분이었다. 퇴직 후 노년을 아름다운 일을 위해 투자하는 그들이 부러워 나는 참 행복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최부의 묘는 처가인 해남에서, 그의 부친인 진사(進士) 택(擇)의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묘터로 이장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부친의 묘터는 중국에서 국위를 선양한 최부의 공을 가상히 여긴 성종이 나라의 풍수가를 보내 정한 명당이다.

 성지파(聖智派) 종회 회장( 崔化祥)의 전승기억에 따르면 , 부친의 봉분이 더 웅장한 것은 나주 인근의 유림들이 너도 나도 몰려와 흙삽을 보태서 그렇다는 얘기다.  최부의 생전, 영롱한 재주와 염결한 성충(誠忠)이 이미 고향인 나주인근에 자자했던 모양이다. 

 비석에 새겨진 최부 선생의 처는 해남 정(鄭)씨였으나 , 그의 부친인 진사 택의 부인은 려양 진(陳) 씨여서  잠시 눈길이 멈췄다. 우리 어머니와 동성동본이었기 때문이다.

 

 성지파 종친회 회장이 열어준 제실의 안 마당으로 들어섰다. 이 제실은 재력있는 어느 후손이 기부한 돈으로 지었다 한다. 묘 입구의 기념석물 등도  후손들의 기증에 의한 것일 뿐,나주시나 무안군 등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것은 전무하다고 한다.

 최 회장은 그 원인을 죄부 할아버지가 적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정부인에게서 딸만 셋을 낳았던 데서 찾았다. 최부가 연산군의 갑자사화로 형사(刑死) 당한 후 60년이 지난 선조5년, 그의 문집이 전라도 관찰사였던 그의 외손자 유희춘(柳希春)에 의해 작성된 것이 그렇고 ... 제사를 모시기 위해 서출인 사내 아이를 적자로 봉해달라고 인근 유림들이 당시 중종에게 상소를 올려 이를 딱하게 여긴 중종의 은혜로 그의 할아버지들이 양반행세를 하게 되었다는 얘기는 아연 눈물겨웟다.    

 마침, 경모제 안에 모셔져 있던 최부선생의 알성급제를 알리는  교지를 본 것은 큰 수확이었다.

 

 

 최 회장이 생가터를 보여주겠다며 나주시 동강면 성지부락으로 이끌었다. 주소 지명이 다른 것은 최부선생의 출생지인 ( 곡강면 성지촌) 곡강면이 동강면과 공산면으로 분할된 탓이라 여겨졌다. 생가터는 지금은 여수 사람의 손에 넘어가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고, 성지부락을 굽어보는 성지부락 초입의 얕은 언덕에 세워진 벌거벗은 유허비는 600여 년간  풍화가 지속되어 뒷면에 새겨진 한문을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다행이 후손들이  그 글자들을 어렵게 찾아 옆에 새 비를 세웠다고는 하나 왠지 초라하여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중국과 일본과 미국인 학자들조차 최부의 '표해록'에 대해 세계적 견문록으로 높은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판에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공연한 분노와 자괴감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표해록의 최초 국역본 (1979년) 저자인 만지(晩之) 최기홍 선생이 주도한 최부기념사업회가 중국 현지 표해록 연구가들의 도움으로 중국 현지답사를 비롯, 몇 몇 곳에는 행정(行程)기념비까지 세웠다는 얘기를 들었던 바, 정작 국내의 최부 유적에는 여태껏 누구 하나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유허비나 최부의 묘 관광단지 조성을 위해 군수를 찾아가고 시장을 만나고 건설국장을 만나 문화재보호차원의 지원을 당부했지만 하나같이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이 모든 것을 후손들의 무능으로 돌렸다.  그는 이어서  박물관을 하나 지어보려고 해도 최근 광주 박물관에 기증한 유희춘이 남긴  '표해록'과 최부의 문집 외에는 못난 후손들이 죄 없애버렸다고 한탄했다.

 

  후손들이나 , 이날 모인 우리들이나

 최부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뭔가 실천적인  일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짙다. 오늘 제작한 영상물이  널리 알려져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세인의 관심을 모았으면 좋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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