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바다야 보고 싶다(후랑코와 바다)

알라스카김 2008. 9. 25. 09:18

지난 2 월에 막내 동생이 김해의 산장에서 젖을 막 뗀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진도개 잡종이었는데 털이 복슬복슬한게 귀엽게 생긴 숫놈이었다.

 

 그런데 개보다 먼저 우리 집에 들어와 터주대감 노릇을 하는 동물로 '후랑코'라는 암코양이가 있었다. 후랑코는 7년 전 고향에 성묘하러 갔다가 산 속에서 울고 있는 ,호랑이 무늬의 눈도 못뜬 고양이 한 마리가 엄마를 찾아 울고 있길래 산짐승의 먹이가 될까봐 품에 안고 온 녀석이다. 우유를 먹여 키웠는데 차즘 자라면서 저 혼자 화장실 변기에 올라가 똥오줌을 누는 영리함을 보이길래 집안에 두고 애지중지 키웠다.

고양이 이름을 "후랑코"라 지었을 때 칠순이 넘은 모친은 "그게 무슨 이름이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나  이름이 입안에서 거칠 게 없어 한번 두번 부르다 보니 모친도 어느새 그 이름이 입에 붙은 상 싶었다. 그런데 고양이란 족속이 원래 사람을 따르지 않아 그게 영 섭섭하고 그래서인지 깊은  정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7 년인가 데리고 있음은 ,일 년 만에 남자를 사귀어 새끼를 가졌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고통도 없이 유산을 하더니만 이 녀석이 그 후로 영 아이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나를 안심시키는 일은 동네에서 암놈이 귀한지 망나니같이 생긴 가지 각색의 숫놈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웠는데 그 때마다 후랑코는 기특하게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남정네들을 끌고 가 놀다 오는 것이었다. 달 밝은 밤에 남녀가 담벼락을 타고 다니면서 교성을 질러 대기라도 하면 그만큼  소름끼치는 일이 없었다.

모친이 어느 날 노환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시자 후랑코의 밥을 챙기는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들 두 놈이 군입대와 서울유학으로 뿔뿔히 흩어진 집에그래도 후랑코가 유일한 말 동무인지라 한 동안 음식점에 가서 생선 뼉다기 챙기는 것이 나의 일과이다시피 했다. 그런 쓸쓸한 시간을 보내다가 4 년 전 나는 인생의 반려자를 새로 맞아 들였다. 아내는 신행(新行)의 첫 일로 후랑코를 집 밖으로 내 �았다. 후랑코는 야생이라 유난히 털이 길었는데 온 집안이 고양이 털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던 것이었다.

후랑코와의 사랑이 그렇게 해서 시나브로 식어 갈 즈음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생기고 보니 나는 갑자기 생기가 돌고 퇴근 길이 즐거웠다. 나는 우선 그 녀석의 이름을 "바다"로 지었다. 바다의 엄마는 남매를 낳았는데 ,이름을 지은 날 김해 산장의 주인에게 전화를 내었더니 크리스마스 이브 날 태어 났다고 해서 바다의 누나를 겨울이라고 지었다 한다, 겨울바다. 참 멋지다며 우리는 전화기에다 대고 서로 한 바탕 즐거운 웃음을 나누기도 했다.

바다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어깨에 힘이 많이 빠진 늙은 후랑코와도 싸우지 않고 잘 지냈다.집 안 뜰에서 작년에 심었던 노란색,보라빛 야생화들이 피어나고 함박 꽃이 피고지고 접동백의 붉은 꽃잎이 주저리 주저리 열릴 동안 바다는 점 점 몸집이 불고 귀가 쫑긋 일어서면서 얼굴도 미소년의 아름다움으로 윤곽이 또렸해 지고 있었다. 최근엔 집안 골목을 들어 서기가 무섭게 들려오는 바다의 노래소리가 고맙고 즐거워 술을 마시고 온 날이면 마당에서 그를 껴안고 벅구를 치며 놀곤 했다.

그러던 4월 어느 날,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니 바다의 노래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엎드려 개집 안을 살피니 텅 비었다. 황급히 아내를 불러 바다를 찾았는데 아내의 대답이 가관이고 걸작이었다.

" 그리 바다가 좋소? 아침마다 개똥은 누가 치우요. 제 때 안 치우면 온 동네 파리들이 다 날아오지. 개 밥은 또 우짜고요. 짐승 밥 땜에 어디 외출을 맘대로 할 수 있나...당신 술 먹고 개하고 뒹구는 걸 보면 속에 천불이 납디다. 당신 그 얼굴 까낀거 보소. 어제 개 목줄에 걸려 마당에 나뒹군 것 아요 모르요? 삼촌 시켜 저거 집에 보냈어요."

저녁상을 물리고 마당에 나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봉긋이 꽃봉우리가 솟아 올라온 장미나무를 바라보며 나는 아내의 결벽증을 미처 배려하지 못한 것을 탄식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보삼아 개똥이라도 해결하였더라면 하는 후회가 새삼 밀려왔다. 그래도 바다가 너무 보고싶었다.

 

아무래도 내가 손자 손녀 볼 나이가 되어 가는가 보다.

2004.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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