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를 듣습니까
2월이 지나도록 찬바람이 무성하네요
남태평양의 바다에서 20여 일을 머물다가
돌아오면 겨울의 꽁무니를 보겠거니 했지요
달리 겨울이 지겨운 것은 보일러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해 늦은 가을 보일러가 터져 자빠졌다길래
올 겨울은 난로로 버티자 그랬지요
3월이면 어차피 버리고 떠날 집인데...하고요
그래서인지,지금 저희 집은 폐허를 방불케 합니다.
시들고 말라비틀어진 식물의 줄기들이,특히 마당가 하늘을 덮었던 수세미의 흔적이
마치 풍장의 형해(形骸)를 보듯 쓸쓸하고 처연합니다
예년처럼 나도 아내도 종내 낫을 들지 않았습니다
곧 허물어질 독립가옥의 운명을 생각하고
미구에 뿌리채 뽑혀 죽어갈 그들의 처지가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벌써 이사가는 일로 동네가 어수선한데 더욱
아내는 열 세 살난 암코양이 후랑코도 떼어놓고 갈 모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푸성귀 같은 마당에서 함박꽃과 수선화의 꽃대가 흙을 뚫고 머리를 내밀고
삐쩍 마른 수수대 같았던 수국의 줄기에는 봉오리가 보리알 같이 돋아나고
재작년 외갓집에서 얻어다 심은 조팝나무에선 새순이 조밥처럼 열려있고
개동백은 수줍은 듯 여태도 빠알간 입술을 머금은 채 서풍이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얼어붙은 그 땅속으로부터 수액을 뽑아 올리는 봄의 소리가 지금 내 귀에
청진기를 대듯 쿵딱거리며 야단법석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우주는 다시금 벅찬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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