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내린 어느날
나는 물이었다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좁은 개울을 흐르다
억세고 단단한 바위를 만나
크게 한번 또는 여러번
허리가 부러질 만큼
휘어지기도 했다
다른 물이 나를 덮치고 휩쓸 때는
차마 땅속으로 스며들고 싶었다
저물녘 어느 강을 지날 때도
나는 무엇을 향해 흘러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문득 소금기 묻은 바람이 다가와
바다에 다다르고 있음을 알렸다
바다에 이르러
그러므로 드디어
나는 이미 내가 아니고
순간을 흐르던 물이 아니고
영원한 바다의
모두란 것을 알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