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초등하교 동창인 영균이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왔다.
일전에 부산 나들이를 했을 때 함 만나 소주라도 할까 했으나
선약이 있다고 해서 만나지 못했었는데 그 일로 전화를 한 걸까?
술에 취한 음성으로 떠듬거리는 영균의 말이 수상해서 다그쳐 물었다.
"어디고? 술집이가? 뭔 좋은 일이라도 있나?"
"그기 아이고...여게 전에 선용이랑 셋이 자주 왔던 집이다...선용이가 고마 죽었다. 흐흐흑..."
설 명절 연휴가 지난 후 불과 며칠이다.
최근 병상에 누운 그의 소식이 부쩍 궁금했으나 누구에게라도 묻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 명절이라고 알리지 말라 했다네."
" 그랬구나..."
영균은 그와 더불어 셋이 함께 나누었던 옛 일을 추억하며 술을 마신 것이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그와 함께 나눈 지난 20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깜박인다.
생각이 깊고 의협심도 강하고 다정하여 유독 센티멘탈한 친구였다.
도리없이 나는 독작으로 소주 한 병을 비운다.
3년 전 간암선고를 받았던 그는 한때 약물치료덕에 종양이 거의 사라졌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그때 간암으로 일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처남들의 일을 떠올리며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그의 쾌유를 손꼽아 빌었었다.
선용에겐 연로한 어머니와 형제들 외엔 유족이 없다.
아예 병원에 드러눕게된 일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가 혼자 감내했던 세상번뇌를 생각하면
솟아나는 연민마저 참혹하다.
그래서 몇 달 전 심장마비로 홀연히 떠난 상태 친구가 허망함에 비해 외려 덜 안쓰럽다.
이 밤 하늘에 바라볼 별 또 하나 사라졌다.
빈 술병처럼 나의 남은 생도 더욱 외롭다.
잘 가시게.친구여.
저 세상 천국에선 이승에서 누리지 못한 복락을 맘껏 누리시게나.
2014.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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