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앞 빈터에 아마추어 화가들이 그림들을 걸어놓고 팔고 있다. 젊은 시절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나는 아마추어 화가들의 그림을 사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그 당시 수집에 열을 올린 것은 그림 말고도 모자,지폐,동전,파이프 등이 있었다.
탱고춤을 추는 커플을 그린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5호짜리 캔버스 한 장에 20불이라 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줄 출장선물로 모두 14장을 샀다. 40대 후반의 여류화가는 감격하여 내 손을 잡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탱고춤의 본향인 보카지역을 구경하며 이탈리아식 스파게티를 맛볼까 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일행을 이끌고 걸어서 호텔로 향했다.
행로에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유명한 떼아트르 콜론(Theatro Colon) 건물과 마주쳤다. 관광객들이 줄지어 섰는 것을 보니 공연수입보다는 관광객 입장료가 더 대단할 것 같았다. 이마저 관광명소인 것이 내겐 또한 금시초문이었다.
기억의 창고는 각 개인의 관심의 분량과 집중도에 따라 그 부피가 다를 것이다. 그 시절 변호사 사무실과 한인들이 모여 사는 백구촌(109번 버스종점),골프연습장이 주된 방문처였으므로 시내를 구석구석 살피는 관광의 한가로움은 내겐 아주 먼 얘기였다. 그래도 부에노스에서의 마지막 날,나는 애써 두 사람의 얼굴을 머리에 떠올리고 있었다.
밤이면 드물게, 리오밤바 거리에 있는 바를 찾곤 했었다. 한국의 룸살롱과 비교하면 실비주점이었지만 그곳에는 부룩실즈보다 더 예쁜, 세뇨리타들이 언제나 서너 명씩 프리랜스로 죽치고 있었다. 영어에 능한, 원주민 가우쵸( 카우보이)의 후손인, 그 여자의 몸은 질긴 고무였다. 그녀는 마치 맷집이 좋은 복싱선수 같아서, 세 차례 시합에서 나는 매번 3 라운드를 못넘기고 코피를 쏟으며 쓰러졌었다.
나와 단둘이서, 한 달 가까이 법원제출 서류의 번역일을 맡아 주었던 당시 28살의 이혼녀 S.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해 볼 시간도, 방법도 지금 내겐 없다. 기억의 창고에서 꺼집어 낸다는 것이 고작 술과 여자라니... 부끄럽기도 하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저녁을 먹으러 백구촌의 한국식당을 찾았다. 볼리비아 등지에서 몰려든 불법체류자들로
이미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어 한국인들이 많이 떠났다고 한다. 식당이라 해도 강도들을 대비해 간판도 있는둥 마는둥 출입구도 폐쇄적이어서 다소 썰렁한 기분이다. 그래도 식당의 벽면엔 한국에서 다녀간 내노라는 사람들의 족적이 주렁하다. 내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의 친필메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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