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설

수바의 동쪽-1

알라스카김 2015. 8. 19. 11:59

피지의 수도이자 참치어선의 기지로 유명한 수바(Suba)에 도착한 것은 지난 1월 18일 오후 1시였습니다. 인천에서 9시간여를 날아 난디(Nadi)국제공항에 닿은 것이 아침 9시 무렵(한국보다 3시간 빠름)이었는데 남쪽의 수바까지 승용차로 꼬박 3시간을 더 달렸습니다.

수바에서 참치어구와 선용품을 팔고 있는 선배가 주선한, 나를 태우고 바다로 나갈 Seawill호는 나의 도착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출항을 늦추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행의 피로를 뒤로한 채 선배와 나는 한국교포가 운영하는 코리언하우스에서 된장찌개로 허기를 채우고 곧장 부두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뿌렸습니다. 스코올인가 했더니 태풍이 끌고 오는 비라고 했습니다. 피지섬의 동북방 해상에서 발생한 중심풍속이  64노트인 큰 스톰(storm)이라고 했습니다.

배는 오후 3시에 출항을 했습니다.저속으로 좁은 수로를  나아가니 해안에 바짝 붙어선 산호초밭에 배가 한 척 비스듬히 누워있었습니다. 일년 전 어느 부주의한 한국선장이 초밭에 얹힌 것인데 선주가 망하는 바람에 여때까지 방치되어 있다 합니다. 특히 입항할 때 산호초에 얹히는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고 하더군요. 수로를 벗어나 큰 바다로 나서자 바다의 물결이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선으로선 여태껏 내가 탄 배중에 제일 작은 120톤급 규모의 빙장참치선이었습니다. 내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자 선장이 곁에서 이 배가 피지에서 제일 놀기 잘하는 배라고 귀띔을 합니다. 네덜란드에서 건조된 트롤어선을 개조한 것인데 선저가 팽이모양으로 생겨 그렇다는 것입니다. 롤링의 폭을 줄이기 위해 포트(port:배의 좌현)에 스태블라이저(stablizer)를 부착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해가 질 때까지만 해도 나는 태연했습니다. 태풍의 진로는 남서쪽이었고 씨윌호의 헤징(heading)은 날짜변경선인 서경 180도 남동방향이었기 때문입니다. 해가 지자 선장은 브릿지 한켠에 나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선장용외엔 침대가 없었지만 선원들이 모두 피지현지인과 인도네시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차마 선원들 침실로 나를 내려보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덕에 나는 밤새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배가 좌우로 기울 때마다 나는 보료에 실려 좌우로 쓸려다녔습니다. 첫 날밤이라 보료밑에 깔창을 댈 생각을 선장이 미처 못했던 것이지요. 다행히 야간항해 당직을 섰던 인도네시아 초사 안도(Yando)가 짐짝처럼 구르는 나의 모습이 딱했던지 다음 날 아침 선장에게 보고를 하자 선장이 죄송하다며  곧장 희한한 깔창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른 아침 비틀거리며 브릿지를 나와 보니 선미쪽에서 피지선원들이 어느새 투승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낚 시에 다는 미끼는 작은 정어리와 오징어였습니다. 목적한 어장으로 가는 길에 선장이 시험삼아 낚시를 담가본 것인데, 바다가 온사방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이른바 황천(荒天)조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몸의 중심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음에도 나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바다속의 어족(魚族)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가슴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바의 동쪽-3  (0) 2015.08.20
수바의 동쪽-2  (0) 2015.08.19
네팔여행  (0) 2013.07.19
바다가 보이는 풍경  (0) 2012.04.12
쁘레오브라쟈니예의 추억들  (0) 200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