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이원화 선생이 어죽으로 속을 풀라고 한다.
정형남 선생님은 새벽 4시까지 막걸리 잔을 붙드셨다고 하는데
마당의 정자에서 겨우 1시간 남짓 주무시고 일어나는 노익장을 과시하셨다.
화도교회 안수집사인 촌장이 (공식적인 마을의 지도자는 어촌계장과 이장이지만 촌장이란 별칭은
내가 지은 상징어임.그의 직업은 화도 한국전력 발전사업소의 소장이다) 식사후 일행을 재촉하여 마을
순회를 시킨다. 교회 예배시간 전에 끝내야하므로 마음이 바쁜 사람은 그 뿐이었다.
마을 뒷산을 올라 동서남북 한 바퀴 도는 코스다.
특이한 것은 그가 현재 수리중인 버려진 집이었다.
거금대교와 싱싱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남향집이었다.
집을 지키던 80 넘은 노부부가 자식들 곁에 살러간 뒤로 오래 비워진 집이었다.
일본에 살고 있다는.그들의 큰 아들이자 고향선배인 집 주인은
집이며 땅은 팔 생각이 없다면서도 그에게 니 돈으로 고쳐서 살든지 말든지 네 맘대로하라고 했단다.
이미 집 마당 한 쪽에 부엌과 욕실및 화장실 전용으로 쓸 컨테이너 건물을 들였다.
공무원인 아내의 직장이 목포여서,가족들은 모두 목포에 있고 그는 목포-화도를 오가는 주말부부로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순회길에 동편 언덕 바닷가에 앉은 작은 집을 가리키며 그의 생가라고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돈을 들여가며? 돈이 모자라 펀드를 모집하고 싶다면서?
나의 궁금증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꿈은, 장차 이 집을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인데
이 집에서 글을 쓰고 싶다면 나를 포함해서 누구라도 언제든지 환영하겠다는 것이다.
갸륵한 생각이라며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은 나의 오랜 꿈이기도 했다.
나 또한 나의 고향바다를 그리고 있었다.
바다는 내게 언제나 그리운 그 무엇이었다.
매일 밤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들고 싶다는 간절함이기도 하다.
가까운 내일,그가 내게 여수의 하롱베이를 구경시켜주겠노라고 했다.
또한 감사하고 고마운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