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도는 아름다운 동백꽂으로 뒤덮혔던 엣 시절 이름이다.
김양식이 유행하자 사람들이 떼로 몰려들어 가파른 산비탈의 나무들을 죄 없애고 다랑이논 같은 김건조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시절,주변 바다도 어촌계나 외지인들이 사들여 '하늘따지' '신간지'...등 저마다 이름을 붙여 니꺼 내꺼하며 나누었다고 한다. 지금도 화도주변 바다는 어촌계 관할로 바지락,미역, 다시마,전복,가두리 양식장 등으로 나뉘며 각각의 규모도 60,80,30 헥타르 등이라 한다.
오후 4시 무렵 , 간조가 끝나자 상화도(上花島)로 가는 바닷길이 열렸다.
여수에서 온 한광현 작가가 개발하러 가자며 젊은 일행들을 선동했다. 옷을 벗은 뻘밭이 바지락 군락지라며.
나는 바다가 외출한 선착장을 둘러 본다.
배들의 낮잠은 곤하고,
저들의 휴식은 제법 안락해 보인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달리 불편하다.
글을 쓰겠노라 작정만 하고 하루 하루 시간을 늦추고 있는 탓이다.
행함이 없는 말은 만구 씰 데 없고,
나의 휴식은 단지 무료하고 무익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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