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장이 교회에서 돌아오자 일행들은 짐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풍류패의 고문이신 정형남 선생님이 정한 다음 목적지는 거금도(금산)의 익금해수욕장이었다.
"거게서 막걸리나 먹고 가세."
키를 잡은 촌장 옆에 선 자는 이정훈 평론가가 선박 안전관리 요원이라 명명한 순천의 문 창훈씨다.
그런데 돌아오는 배안에서 문 씨의 자격에 대한 의혹과 비난이 쏟아졌다. 독설은 늘 평론가의 몫이었다.
듣자하니 지난 밤에 연흥미술관 선호남 관장이 자긴 밤을 샐 수 없다며 연흥도까지 실어다 달라는 말에
화도 촌장을 설득(?)하여 편도 20분 걸리는 야간항해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등대도 불빛도 없는 어둠속의 뱃길이었다. 바다에서는 모두 안전사고이므로, 그 어둠속에 만약 암초에라도 배가 얹혔다면 모든 책임은 야간항해를 방조한 문씨에게 있다는 얘기였다. 그런 자가 오늘도 예외없이 선장과 나란히 서있다니, 보기싫어 아주 죽겠다는 말이었다.
정 선생님을 모시고 익금해수욕장에 닿으니 먼저 간 줄 알았던 회장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나 그들은 뒷 배로 온 손남들과 합류하여 연소해수욕장으로 가 있었다. 이윤즉은 그곳은 오래 전 김칠선 회장이 교편을 잡았던 추억의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섬마을 어느 여자 학부형이 부임 후 첫대면에서 한 환영사가 믿거나 말거나 이랬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오늘부터 내꺼야."
5분 거리인 익금해수욕장으로 장소를 옮긴 뒤에도 섬마을 선생님의 과분한 추억은 말끝마다 꼬리를 물었다.점심을 생략한 터라,처음에는 먹다 남은 홍어회와 홍어코가 좋은 안주더니 나중엔 김 회장의 금산고등학교 시절 애인으로까지 비화되어 모두가 그 여자를 보러 가자고 야단이었다.
추억여행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앞장 선 사람은 다름아닌 올해 74세인 정형남 선생님이셨다.
기사노릇을 해야하는 나와 한광현 작가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시종 입을 다문 국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