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귀신고래의 사랑( 2020 년,해양과 문학)

알라스카김 2020. 1. 27. 14:00

 

귀신고래의 사랑

 

  유즈노 사할린스크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7월 중순의 햇볕 아래 장비와 옷가방 등을 옮기느라 땀을 많이 쏟았지만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몸이 상쾌해졌다. 랜딩기술은 러시아 비행사가 세계 제일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어 언제 한 번 러시아 비행기를 타봤으면 했지만, 이번에도 서울에서 NOAA(미국해양대기청)의 해양수산국 소속 Dave W. Weller 박사를 만나 동행해야 했으므로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목적지는 사할린 북동부에 위치한 Piltun Lagoon(석호潟湖)으로 사할린에 도착해 다시 Okah 공항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 그곳에서 Piltun까지 육로로 4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고단한 길이었다. 동호가 한국인으로 사할린 귀신고래 조사활동에 참여한 것은 그가 고래연구소 인턴시절이었던 2003년이었다. 데이브 박사를 처음 만난 것도 그때였다. 그 이후 해마다 그의 초청을 받아 동호는 사할린을 방문했다. 다름 아닌 미국-러시아 연합 귀신고래 서부계군 조사사업이었다.

  동호와 고래와의 인연은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대곡리 암각화는 대곡천과 맞닿은 하나의 거대한 수직 바위면에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다. 인류 최초의 고래어로활동 그림으로 인정받는 선사시대 유물이 공식적으로 학계에 보고된 것은 197112월이었다. 대곡리 암각화가 그려진 바위는 해가 뜨는 방향이 아닌 북쪽을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연중 햇빛과 조우하는 시간이 극히 짧거나 겨울에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햇빛이 가장 길게 머무는 시기는 6월과 7월이지만, 여름철 인근 사연댐의 수심 변화에 따라 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벽면은 언제나 어두운 먹빛이었다. 대학생이었던 동호가 엄각화의 탁본이나 연구논문 등을 열심히 찾아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동호가 고래연구에 사로잡히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고대 한국 동해안의 원주민들이 이미 신석기시대에 창을 사용하여 집단적으로 고래사냥을 하였고, 그림에 등장하는 고래의 종류만도 북방긴수염고래,귀신고래,혹등고래,향고래,범고래 등 무려 8종류였다는 사실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림의 고래잡이배에 무려 20여 명의 선원들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졸업 후 10년 이상 바다 위를 떠돌며 고래의 흔적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반구대 암각화와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다고 믿고 있다.

 

- 도브로이 젠!

  공항에 나와 기다린 사람은 사할린 환경단체 소속인 디마였다. 2년 전 러시아 조사요원으로 필툰 등대에 왔던 그녀는 동호와는 구면이었다. 디마가 팔을 벌려 달려들며 아직 총각인 그의 목을 껴안았다. 30대 초반인 그녀의 품은 넉넉하고 따뜻했다. 채식주의자인 데이브는  악수만으로 그녀의 환대에 답했다.

  뜻하지 않게 데이브가 부친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 일로 두 사람은 사할린 환경단체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유주노사할린스크에서 하릴없이 3일을 허비해야만 했다. 필툰으로 가는 일에 신경이 곤두선 두 사람은 끼니때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달리 갈만한 식당도 없어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인식당을 자주 찾았는데, 김치찌게나 부대찌게거나 데이브가 고기를 모두 빼달라는 바람에 동호는 더욱 난감하기까지 했다.

  NGO 사무실을 가지 않을 때는 함께 호텔 앞 공원을 서성거렸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동호가 일주일 전에 찍었던 혹등고래 동영상을 데이브에게 보여주자 그의 반응이 의외로 뜨거웠다.

- , 놀라워라! 혹등고래는 이제 한국연안에서 멸종된 것으로 아는데...

  혹등고래는 여름에 캄챠카반도 인근에서 섭이활동을 하고 겨울에는 일본의 오가사와라 쪽으로 내려와 번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은 최근의 연구결과다. 정작 그가 놀란 것은 여름인 7월에 혹등고래가 동해연안에 나타났다는 사실이었다. 아래턱 복부에서 항문까지 폭이 넓은 주름이 15-35개 깔려 있는 이것은 반구대 암각화에도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등 쪽은 기저가 넓은 큰 혹 위에 등지느러미가 얹혀있는 모습을 띤다. 그러므로 미국과 러시아 학계에서 동해안으로 남하하는 귀신고래만을 한국산이라 명명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북서대서양의 귀신고래는 17-18세기에 멸종되었지만 북태평양의 그것은 학살의 시대를 지나 비록 극소수지만 아직도 생존하고 있다. 한국연안에서 귀신고래가 마지막으로 어획된 자료는 1965년도의 5(). 그 후 귀신고래를 보았다는 기록은 19771월 방어진 앞바다에서 2마리를 목격한 포경선 대양호(大洋號) 선장의 증언이 유일했다. 그러므로 한국산 귀신고래는 멸종된 것이 아니라 한국연안에서 사라졌다고 해야 옳다.

-Dave, 한국에서는 Grey Whale을 통상 귀신고래라 부르는데 그 연유를 아는가?

-영국의 고래잡이들은 예로부터 악마의 물고기(Devil fish)’라 불렀다. 이는 자기를 쫓고 있는 무리를 향해 가끔씩 머리를 돌려 보트를 덮치거나 선원들을 공격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Grey는 회색빛이 도는 몸체의 색깔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네가 알고 있는 그 연유는 뭔가?

-예전 울산 사람들은 돌고래라 불렀다. 이는 접안하여 돌 사이로 지나다니는 습성 때문에 그렇다. 다른 한편 19세기에 한국연안에 자주 출몰했던 미국 포경선원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들이 이 고래는 겁이 많고 영리하여 포경선이 쫓으면 잠수하여 수중에서 마치 귀신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부상위치를 예측하지 못한다.’고 기록했거든. 또 다른 의견은 머리와 꼬리부위에 따개비나 고래이 등 부착생물이 많아 그 모습이 기괴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도 해. 그러나 귀신고래란 명칭은 암초가 많은 곳에서 귀신처럼 출몰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정설이야.

-와-! 미스터 김, 당신을 한국 제 일의 귀신고래 전문가라고 부르고 싶어

 

 

  공항에서 데이브의 짐을 찾아 두 사람이 프로펠라 엔진의 소형 비행기를 타고 오하로 출발한 것은 오전 10시 경이었다. 비행시간은 약 2시간. 바람이 불지 않아 낡은 엔진소음만 아니었다면 쾌적한 비행이었다. 공항에는 등대지기 할아버지 유리가 짚 차를 타고 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4시간이 소요되는 필툰 등대를 향해 다시 먼 길을 떠났다.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시작되는 비포장도로를 동호는 늘 선사시대로 접어드는 숲길이라 여겼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 오늘도 숲속 어디선가 사냥을 끝낸 고단한 짐승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차바퀴에 짓눌려 패인 흙길이 간밤에 호랑이에 쫓긴 멧돼지들의 발자국인 양 투박하고 거칠었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동호는 자신이 호랑이 발자국을 찾아 극동의 타이가(원시림)를 유랑하는 외로운 사냥꾼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낮은 구릉을 수없이 넘으며 차창으로 스치는 여름의 숲들을 마치 사진을 찍듯 머리에 담았다. 소나무, 피나무, 굴참나무, 낙엽송, 자작나무,.. 호랑이가 지나간 습하고 어두운 오솔길. 숲이 비워둔 사냥꾼들의 야영지. 그 옆을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 졸음과 함께 찾아온 그의 분별없는 상념을 깨뜨린 것은 데이브였다.

-미스터 김, 저길 봐! 귀신고래야!

  그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 한 떼의 물새들이 날고 있었고 그 뒤로 작은 물보라가 일었다. 목시(目視)거리를 감안하면 4미터 가량의 높이로 좌우로 갈라지는 풍성한 분기였다. 그 짧은 순간, 갯바위 같은 머리를 살짝 수면 위로 드러낸 유영행동까지 틀림없는 귀신고래였다.

  숲길이 끝나고 어느새 푸른빛의 바다가 나타난 것이다. 목적지인 필툰 석호(潟湖)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였다. 찻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유리가 도착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곧이어 등대 쪽에서 보트가 움직였고, 잠시 후 남녀가 섞인 세 명의 조사원들이 보트에서 내리며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악수를 나눈 뒤 조사원들이 내민 보드카와 빵으로 선 자리에서 함께 축배를 들었다.

 

  등대에 도착하여, 오두막 안에 둘러앉아 서로 인사 겸 소개를 한 뒤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 미국인으로는 아만다, 에이미, 낸시, 데이브로 여자 3명에 남자 1명이었고, 러시아 측은 율리아, 나타샤, 세르게이 여자 2명에 남자 1명이었다. 한국인으로 유일한 동호를 합해 조사원은 모두 8명이었다. 등대지기 유리 부부는 바로 옆 칸에 기거했다.

  미국의 아만다와 러시아의 율리아는 동호와 5년 전 울산 귀신고래 워크샵에서 알게 된 인연을 바탕으로 몇 차례 조사연구를 함께 한 절친한 동료였고, 특히 3년 전부터 우스리스크 대학생으로 조사연구에 참석해온, 나타샤는 톨스토이도 반했을 만큼 다정다감하고 생기발랄한 처녀였다.

  저녁을 마치고 바람이나 쐬자며 앞장서는 나타샤를 따라 나섰다가 동호는 엄마야 하고 황급히 되돌아왔다, 밤이면 더욱 폭격기처럼 돌진하는 모기들의 극성을 깜빡했던 것이다. 낮이나 밤이나 대기는 남쪽보다 훨씬 차가웠다. 모기퇴치제와 두꺼운 방한복을 갖고 왔지만 문을 열고 다시 나서기가 싫었다. 내일 아침부터 당장 시작될 조사활동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자고 싶었던 것이다. 저녁 10시가 넘었어도 서쪽 하늘은 여태 홀로 엷은 분홍색을 머금고 있었다. 그 연분홍색 커튼의 끝자락에서, 스치는 바람에 고요히 나부끼며 가뭇가뭇 별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오전 7시 기상, 조반을 마치고 8시에 곧장 조사활동이 시작되었다. 수면 위의 바람은 보퍼트 등급 1로 조사활동에 이상적인 기후였다. 등급 3 이상이면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인원초과로 모두 보트를 탈 수가 없었으므로 첫 날, 동호는 데이브와 함께 등대로 올라가 목시조사를 하게 되었다. 목시조사원의 역할은 쌍안경을 이용해 관찰이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고래의 개체수 측정과 보트 근처의 귀신고래 이동경로를 보트로 통보해주는 것이다. 2명이 남쪽과 북쪽을 분담하여 관찰과 기록을 수행하는데, 여기서는 등대 앞쪽에 보이는 작은 초소와 그 왼쪽의 라디오 안테나를 기준으로 위치를 설명한다.

  데이브가 남쪽을 맡았다. 오늘 동호가 사용한 것은 컴퍼스 내장형 7배율 쌍안경이었다. 5km 떨어진 곳의 고래도 관측할 수 있는 장비였다. 조사방법은 군대에서 적 탱크를 찾아내는 것과 흡사하다. 먼저 지형지물과 사거리를 산출해 사경도를 작성하고 조사구역을 분할한다. 한 구역마다 30초가량 조사해 나간다. 전체 구역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전체 개체수가 파악되는 것이다. 언뜻 쉬운 듯해도 결코 한눈을 팔면 안 된다. 잠깐 사이에 고래가 눈앞에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시간 마다 한 번씩 해서 낮 12시에 조사가 끝났다. 조사결과를 확인해 보니 데이브는 동호보다 무려 8마리나 많은 20마리를 목격했다.

  열등감은 코딱지 만 했다. 동호가 배 주위에서 spyhop(주위 둘러보기)하는 녀석을 보았다고 자랑하자 데이브는 자기는 breaching(뛰어오르기)하는 녀석을 보았다며 시큰둥하게 응수했다. 수면 위로 머리나 상반신을 곧추세워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듯한 행동보다, 몸을 세워 수면 위를 수직으로 뛰어 올라왔다가 비스듬히 또는 뒤쪽으로 쓰러지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브리칭이 훨씬 역동적이고 장관이었다. 어쩌다 보트를 따라오며 연속적인 브리칭을 구사하는 녀석들을 만날 때면 감탄이 절로 터지고 물에 뛰어들어 덥석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마저 느낄 정도였다. 고래들마다 제각기 성격이 다르다는 데이브의 말이 떠올랐다. 코딱지를 떼어내듯 동호는 멋쩍게 웃고 말았다.

  오늘 두 사람이 관찰한 고래는 모두 섭이활동 중이었다. 귀신고래의 행동 특성을 섭이활동(Feeding),이동(Moving),회유(Traveling),휴식(Resting),수면활동(Surface activity),알 수 없음(Unknown)6가지로 구분한다. 이동은 회유보다 속도가 느리고 방향성이 적다. 섭이활동을 하는 고래는 한 지역에서 천천히 유영하며, 또한 보트에서 보면 물속에서 진흙탕이 이는 것도 볼 수 있다. 이는 바다 밑바닥에 서식하는 대합과 게 등을 먹고 사는 고래로 귀신고래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고래의 입언저리는 대부분 상처투성이로 얼룩져 있다.

  보트에 탄 조사원들이 돌아온 것은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나타샤가 동호 곁으로 다가오더니 오늘은 해수온도가 1.5도였다고 말해주었다. 여름이면 보통 12-15도 사이인데 저수온 현상은 흔치 않은 경우다. 그래도 오늘은 필툰 등대 근처에 귀신고래가 많이 몰려있어 다행이었다.

 

 

  오늘은 보트를 타고 나가는 날, 카메라와 캠 코드를 챙겨 배에 올랐다. 석호의 길이는 약 90km이고 가장 넓은 지역의 폭은 15km 정도다. 위도 5250N, 경도 14320E에 위치한 하나의 수로가 석호와 오호츠크해를 이어주고 있었다. 이 수로를 통해 연안으로부터 다량의 영양염이 공급되어 귀신고래의 먹이가 되는 저서 무척추동물의 생육과 증식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한다. 등대가 이 조사의 기지역할을 함은 수로와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채널을 빠져 나가는 동안 바다표범의 무리와 참수리 두 마리를 볼 수 있었다. 물고기를 물고 사구를 올라가는 여우 어미 한 마리도 목격했다. 언젠가 여우 어미와 새끼들이 3미터의 얕은 물에서 함께 헤엄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고무모터보트를 이용하는 조사는 보터 조정자, 야장기록자, 카메라 촬영자, 비디오 촬영자 로 구성된다. 촬영은 3국의 요원들이 동원되므로 누가 언제 어떻게 좋은 장면을 찍는가는 각자의 순간포착 능력이나 위치선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신고래는 각 개체마다 체부에 고유의 독특한 반점과 색소패턴을 갖는다. 조사지에서 촬영한 각 개체의 양 측면, 꼬리지느러미 후면을 기준으로 삼아 작성된 카탈로그를 바탕으로 조사기간 동안 촬영한 사진과 대조해 개체식별을 한다. 귀신고래의 자료는 필툰 석호에서 지난 12년 동안의 연구로 꾸준히 수집된 것이었다. 개체 식별은 고래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고래의 체부에 생긴 상처 등에 주목하여 서식환경의 변화를 살피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무늬나 자국이 카탈로그 사진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새로 발견된 고래로 간주하여 그 개체에게 새로운 식별번호를 부여한다. 특히 새로 발견되는 개체거나 카메라나 비디오 촬영으로 개체식별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유전자 분석을 위한 Biopsy(생체조직절편검사법)를 실시한다. 시료수집도구로는 주로 총이나 작살, 석궁이 사용되는데, 필툰에서는 현장에서 보수유지가 용이한 석궁을 사용했다.

  귀신고래의 개체나 군집을 발견하면 보트 조정자는 배를 기동시켜 일차적으로 50m까지 거리를 좁힌다. 그 다음 보다 용이한 촬영을 위해 또는 Biopsy을 위한 가장 알맞은 거리인 15m까지 속력을 낮춰 다가간다. 야장기록자와 촬영자들이 바빠지는 것은 이때부터다. 모든 경우 고래의 오른쪽 측면을 우선적으로 촬영하며 왼쪽 측면과 꼬리는 부차적이다. 모든 자료가 오른쪽 측면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보트 조정자는 바람의 방향, 광원의 위치, 고래의 진행방향 등을 파악하여 촬영자가 가장 용이하게 고래의 체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위치를 제어해야 한다. 5m 내외로 수심이 얕은 지대라 깊은 잠수를 위해 꼬리를 드러내는 일이 흔치않음에도 오늘은 많은 고래들의 꼬리를 볼 수 있었다.

  보트 조정자는 세르게이였다. 올 해 처음 보는 친구였지만 날렵하게 생긴 체구에 걸맞게 보터 운용이 아주 능숙했다. 세르게이의 도움으로 동호는 새끼고래 두 마리의 Biopsy에 성공했다. 덩치가 작고 주둥이가 뭉툭한 몇 마리의 쇠돌고래를 만난 것은 덤이었다. 쇠돌고래는 돌고래처럼 무리를 이루지 않고 각 개체별로 따로 움직였다. 등의 일부가 드러났다가 사라지면서 자그마한 삼각형 모양의 등지느러미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조사가 종료된 것은 오후 1시였다. 야장기록자인 아만다가 오늘은 모두 40여 마리의 귀신고래를 만났다고 한다. 흡족한 사진 촬영과 두 발을 모두 명중시킨 석궁실력에 스스로 도취되어 동호는 기분이 썩 좋았다. 그러나 그 고래들이 한국귀신고래 총 개체수의 20% 미만인 것이 못내 아쉬웠다.

  등대로 귀환하던 도중 동호가 오늘 비디오 촬영을 한 데이브를 불렀다.

-귀신고래가 회유중일 때도 꼬리지느러미를 볼 수 있는가?

회유중인 귀신고래를 이때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동호였다.

- 그렇다. 깊은 잠수를 할 때 특히 그렇고, 가끔 물 밖으로 나온 꼬리를 볼 수가 있지.

-그런데 브리칭하는 녀석은 오늘 왜 볼 수 없었지?

-내가 전에 말했잖아. 귀신고래라고 해도 다 다르다고.

 

  720일부터 조사에 착수했지만 8월 하순이 될 때까지 순 조사일수가 고작 15일에 불과했다. 조사부진은 대부분 바람 때문이었다. 백파나 너울 외에도 석호의 상공에 짙게 깔리는 안개도 방해요소였다. 데이브와 동호가 도착하기 전, 놀랍게도 그들은 안개 때문에 3주 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고래연구와 관련된 방문자의 내왕을 돕거나 식료품 구매 등으로 보트를 사용할 수 없을 때였다. 한국의 추석 무렵에 집중적으로 북상하는 저기압이나 이곳의 기온을 감안해 조사기한은 대개 9월 중순이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며칠을 더 조사를 할 수 있을지 몰라 모두가 초조해 했다.

  조사가 종료된 오후에는 각자 개별적으로 시료를 보존처리하거나, 사진 등 촬영자료를 정리하여 개체분석에 몰두하였고 조사가 없는 날은 여럿이 또는 혼자 주변산책이나 독서를 하는 등 자유시간을 가졌다. 러시안이나 미국인들은 지방층이 두꺼워 그런지 밖으로 돌아다녀도 모기떼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낸시 등 여자들이 오두막 근처에 접근한 순록을 쫓아 하릴없이 뛰어 다니다가 목동이 휘두른 지팡이에 혼이 나기도 했다.

  하루는 나타샤와 함께 카메라를 들고 석호로 나갔다가 먹이를 찾아 해변을 거닐던 왕눈물떼새와 민물도요새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미스터 김, 물떼새를 보려거든 물때를 잘 맞추어야 해요.

  며칠 전 만조 때 여럿이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가 바다 새 한 마리도 구경할 수 없었던 것을 상기시킨 말이었다. 처녀총각인 두 사람의 산책을 조사원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았던 새들조차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호가 여자를 즐겁게 해주는 일에 숙맥인 것은 불행이었다. 30대 중반임에도 그는 결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바다 위에서 고래를 찾는 일에 늘 배가 고팠거니와 조사연구보고서를 쓴다거나 고래에 관한 국내외 논문을 읽는 일에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타샤가 입을 열었다.

- 미스터 김, 내년에 전 이 일을 그만두려 해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중이라 동호는 나타샤의 표정을 미처 읽지 못했다.

  조사가 없는 날, 등대로부터 동쪽으로 1.5km 떨어진 호수를 찾는 일도 빈번했다. 호수로 가는 길은 물먹은 스펀지 같은 두꺼운 이끼층과 모래구덩이들의 연속이었다. 이끼 밭에는 키 낮은 소나무들이 듬성듬성했다. 모랫길에는 수많은 짐승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는데 동호가 식별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사슴이나 조그마하고 날카로운 발이 남긴 삵이 전부였다. 이 호수에서 각자 빨래를 하거나 통나무에 걸터앉아 아름다운 원시의 그림을 감상하다가 돌아오곤 했다. 모기퇴치제가 없었다면 동호에겐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한 번은 자유시간에 에이미가 범고래를 보았다는 특종이 있어 모두들 장비를 들고 급히 등대로 달려갔으나 범고래는 이미 먼 바다로 사라진 뒤였다. 석호에 출몰한 범고래의 사진자료가 전무했기 때문에 모두들 허탈해 했다. 수염고래인 귀신고래는 이빨고래인 범고래의 박해대상이었다. 옛 사람은 범고래를 어호(魚虎) 또는 솔피라고 불렀다. 조선시대 실학자는 어호가 덮쳐 곤미해진 귀신고래가 입을 벌리면 입속으로 주둥이를 디밀어 설근을 물어뜯어 죽인다는 기록을 남겼다(林園十六志). 이는 동해안에서 미국 포경선의 고래연구자가 남긴 기록과도 일치한다. 귀신고래는 솔피가 나타나면 당장 겁에 질려 배를 위로 하여 뒤집고 지느러미를 편 채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는데 한 마리의 솔피가 귀신고래의 다문 입술에 주둥이를 갖다 대고 입을 열어 그의 머리를 쑤셔 넣으려고 날뛰었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어느덧 9월 중순이 다가왔다. 공식적인 조사는 총 20회로 끝났다. 식별된 개체수는 모두 83 마리였다. 조사기간 동안 관찰된 새끼 9마리와 올해 처음으로 발견된 성숙 혹은 미성숙개체 2마리를 포함하여 카탈로그에 등록된 고래 전체 개체수는 작년에 비해 11마리가 늘어난 총 169마리였다. 조사해역의 평균수온은 섭씨 10도 언저리였다.

 

  사흘 뒤, 귀국하는 에이미와 함께 동호도 필툰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떠나기 전 원시의 호수를 한 번 더 다녀오고 싶었다. 그의 산책에 나타샤가 또 따라나섰다. 호수를 에워싼 낮은 숲은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보고였다. 선사시대의 숲에 어느덧 가을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내일에 대해 오늘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 숲의 삶이었다. 하늘을 향해 매순간 최선을 다해 우듬지를 내뻗는, 말없는 나무들을 가리켜 누군가는 가장 지혜로운 철학자라고 말했다. 동호는 귀신고래도 저 원시의 숲처럼 하루빨리 무성하길 바랐다. 머지않아 동해에서도 마음 놓고 녀석들을 만날 수 있길 간절히 염원했다.

-미스터 김, 나의 나타샤가 죽었어요.

  동호 곁에 앉았던 나타샤가 뜬금없이 던진 말이었다.

올해 들어 자주 침울한 표정을 보였던 그녀를 그저 막연하게 대했던 그의 뇌리에 그 순간 번쩍하고 섬광이 일었다.

  작년 1월이었다, 남하 회유했던 것으로 보이는 1년생 암컷 한 마리가 요시하마 만의 정치망에 걸려 구조미비로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그 고래가 개체식별번호 151, 바로 Natasha였던 것이다. 동호는 더 이상 먼 숲만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 나타샤, 그래서 당신이 힘들어 했던 것을 저는 까마득히 몰랐네요.

- , 내 분신 같은 그 녀석이 생후 5년이 지나면 새끼를 낳아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올 줄 믿고 있었어요. 5년이 아니라 10년이 걸리더라도 이곳에서 그녀와... 그녀의 새끼를 꼭 보려고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흐느적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는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동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았다. 놀란 사슴처럼 일순 흠칫하던 그녀가 갑자기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밀려오는 너울이 큰 파도가 되면 멀쩡한 배도 넘어졌다. 그는 더 이상 숙맥일 수가 없었다. 깊은 포옹과 함께 두 사람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모기떼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나타샤의 입술은 갓 따낸 포도알처럼 싱그럽고 달콤했다. 그러므로 동호는 그를 쓰러뜨린 풍랑이 결코 두렵지 않았다. 이끼 밭을 뒹구는 그들을 내내 지켜본 것은 내일에 대해 오늘을 걱정하지 않는 원시의 숲이었다.

 

  다음날 저녁, 세르게이가 주도하는 보드카 파티의 제목은 곧 떠날 에이미와 동호였다. 율리아는 취흥이 돌 때마다 자신이 울산에서 먹었다는 김치를 대령하라며 한 손으로 동호의 목을 죄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깔깔거리던 나타샤가 홀연히 일어나 왈츠스텝을 밟았다. 낮 동안 데면데면했던 그녀를 동호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다. 그에게 춤을 청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채식주의자 데이브는 보드카를 마다했다. 그러나 춤추는 나타샤를 보더니 곧장 기타를 들고 나왔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란 노래였다. 그의 노래에 갑자기 방안의 분위기가 폭발했다. 술을 마시기 싫다며 침대로 기어들었던 미국 여자 세 명이 우르르 뛰어 나와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무작정 몸을 흔들어 댄 것이다. 강렬한 비트가 아닌 그냥 쟁쟁거리는 기타 선율이었다.

 

내가 또는 그녀가 서로를 소유했던

나에게 자기 방을 보여준,

멋지지 않나요?

노르웨이의 숲

............

새벽 2시까지 그녀의 와인을 마시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젠 자야겠어요. 내일 아침에 일을 해야 하거든요.

말을 마치고 깔깔 웃던 여자

..............

날이 밝자 나는 혼자였어

날아 가버린 한 마리 새.

그래도 멋지지 않나요?

노르웨이의 숲

 

  누군가 앵콜을 외치자 오두막 천장이 다시 들썩였다. 똑같은 연주가 반복되자 이제는 모두가 신들린 듯 노래를 따라 불렀다.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제목을 빌려 와 쓴 존 레논의 시적인 가사가 비틀즈의 명성을 업고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뒤흔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날 밤, 노래의 반응이 왜 이다지도 폭발적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우습게도 분위기를 선도했던 미국여자들은 노래가 끝나자마자 노르웨이 숲의 여인처럼 주섬주섬 모두 침대를 향했다. 아마도 보드카 파티의 종말을 재촉한 듯싶었다. 세르게이가 순도 90프로짜리 보드카 새 병을 들고 나왔지만 그를 무시한 채, 데이브를 따라 동호도 일어섰다. 그때 세르게이가 동호를 불러 세웠다. 웬 일인가 싶어 등을 돌리자 그가 급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바닥에 주저앉아 훌쩍이고 있는 나타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호가 다가가자 몸을 일으킨 그녀가 곧장 오두막을 빠져나갔다.

  세르게이의 강권으로 독한 보드카를 두 잔이나 받아 마셨다. 혓바닥과 식도가 불붙듯 화끈거렸다. 동호가 나타샤를 걱정하자 세르게이가 살펴보고 오겠다며 일어섰다.

-역시 맹랑한 처녀야. 모터보터에 올라가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더군.

-노래라고? 무슨 노래?

-몰라,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였어. 고래를 향한 그리움이랄까. 가사가 뭐 그랬어. 혹시 두 사람 서로 사랑하는 것 아냐?

  얼굴을 들이대며 세르게이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것은 단순한 호감이나 끌림이었을 뿐이다. 호숫가의 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우연한 합일(合一)이었다. 그것도 사랑이란 말인가. 그가 다시 동호의 술잔을 채웠지만 기분이 상한 동호는 그만 자야겠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침대에 누었으나 나타샤의 상심한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순도 높은 보드카 덕에 그는 백야의 하늘같은 잠속으로 이내 깊이 빠져들었다.

- 미스터 김, 빨리 일어나 봐요. 범고래가 나타났어요.

  비몽사몽간에 누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의 귀에 대고 낮은 소리로 속삭이는 사람은 나타샤였다. 범고래라는 말에 잠이 확 달아났다. 아침이 되면 떠나야 하는데 범고래라니. 지난 번 일을 떠올리면, 분초를 다투는 상황이었다. 자는 사람들을 미처 깨울 겨를도 없었다. 동호는 쌍안경과 캠 코드만 챙겨들고 등대를 향해 황급히 내달았다.

  희붐한 미명이 석호 위를 덮고 있었다. 나타샤는 혼자 밤을 꼬박 새운 듯 했다. 그녀가 범고래를 본 것은 수로 근처였고 녀석은 수컷 성체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돛처럼 높고 큰 등지느러미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수면 위로 움직이는 물체라곤 사방팔방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곁에 선 나타샤가 발을 동동거렸다. 유영속도가 빠른 범고래가 북쪽으로 이동했다면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몸을 돌려 먼 바다로 빠져나갔다면 전날처럼 또 허탕일 것이다. 우선 한숨 돌리자. 동호가 쌍안경에서 눈을 떼며 그녀를 불렀다.

-나타샤, 어젯밤에 보터 위에서 부른 노래를 지금 내게 들려줄 수 있어요?

-어머나!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갑자기 치부를 들킨 사람마냥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동호가 다시 쌍안경으로 수면을 살피는 사이 그녀가 목청을 열었다. 소중한 그 무엇, 간절한 그 무엇이 깃든 멜로디였다. 먼 옛날 알래스카 인디언 추장이 불렀다던 고래잡이 노래와 얼핏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을 끌어 올리는 듯 초성은 묘했지만 새벽 공기를 헤치며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의 끝은 맑고 고았다. 러시아어로 된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노래가 끝났으나 그녀는 어젯밤처럼 울지 않았다. 그러므로 다시 그녀를 안아줄 수도 없었다. 결국 범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샤, 흉포한 범고래가 이곳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길 빕시다. 그런데 노래가사가 궁금하군요.

 

 

  오하로 가는 차안이었다. 에이미가 쪽지 한 장을 동호에게 건넸다. 예쁘게 접은 쪽지를 펼치니 영어로 된 문장이 나타났다. 유려하진 않았지만 정성을 다한 글씨였다.

 

  고래여, 나의 예쁜 딸아.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었다. 내 심장까지도. 너를 만난 것을 나는 신에게 감사하며 노래를 불렀지.

  고래여, 나의 예쁜 딸아. 내 곁을 떠나지 말아다오. 만약 네가 내게로 다시 다가온다면 나는 신에게 감사해야지. 네가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너로 인해 내가 기쁘게 살아 있음을.

  고래여, 나의 예쁜 딸아. 나의 꿈은 너를 다시, 또 다시 만나는 거야. 먼 훗날, 네가 자라서 예쁜 네 아기를 낳을 때까지. 너로 인해 내가 꿈을 갖게 됨을 신에게 감사해야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꿈을,

 

 추신; 자작곡 귀신고래의 사랑이란 노랫말입니다. 나타샤를 잃고 난 후 한 동안 많이 슬펐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었습니다. 고래를 사랑하므로 내겐 아주 특별했던, 당신의 앞날에 행운을 빕니다. 더 스비다니야!

진심을 담아, 우스리스크의 나타샤.

 

  쪽지를 다 읽고 난 동호는 한 순간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었다. 소중하고도 간절한 그 무엇. 에이미만 아니었다면 당장 차를 돌려 나타샤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날아가 버린 한 마리 새. 어젯밤에 불렀던 노래가 동호의 귓가에서 다시 쟁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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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연구원 김 현우님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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