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바닥에 보료를 깔고 자는 잠은 낯설고도 혼곤하였습니다. 전날은 배의 롤링으로 심신이 스산하여 거의 뜬눈이었지만 ,둘째 날은 선장이 마련해준 깔창덕에 요람속에 누운 아기처럼 사뭇사뭇 흔들리며 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야- 이거,어제는 밥값도 못했네.”
미명의 새벽에 양승이 끝난 듯 선장이 어획일지를 보며 한숨을 짓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도 어획일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알바코 67미,옐로우 핀 8미,빅 아이 20미 잡어 포함 1.2톤의 어획고였습니다. 옐로우 핀과 빅 아이는 내가 잠든 틈에 줄줄이 올라온 듯 합니다. 숫자상으론 제법 많이 잡은듯 했지만 선장이 울상을 한 것은 모두 20키로 정도의 잔챙이여서 큰돈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회색빛의 구름들이 수평선 위에 비누거품처럼 엉겨있었으므로 일출의 태양은 구름 뒤에서 붉은 빛만 토하고 있었습니다. 태풍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해면은 무릎을 아주 낮춘 듯 했으나 여기저기로 여전히 백파가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제비 갈매기 한 마리와 남방 흰머리 갈매기 두 마리가 아침 식사를 위해 바다 위를 선회하는 신비스런 광경을 목도하였습니다. 새들은 바다속으로 곤두박질을 하더니 한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마우지처럼 저들도 잠수를 하는가 싶어 궁금한 끝에 선장에게 물었습니다.
“ 잘 모르겠습니더. 아마 딴 데로 날아갔겠지예.”
선장은 바다새의 습성따위에는 영 관심이 없는 눈치였습니다.
먼 대양에서 혼자 또는 두엇, 바다 밑의 고기를 노리며 비행하는 저들의 노동이 참으로 고귀하고 가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미에 무리를 지어 따라오던 북방 괭이 갈매기들처럼 바다새의 군무를 볼 수 없음은 이 바다가 새의 서식처와 멀고 또한 이 배가 연승어선이기 때문이라 여겨졌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구할 수 없는 철저한 독자적 먹이활동은 문명이 탄생되기 이전의 생명활동일 것입니다. 먼 바다에서 만난 그들의 비행이 내게 신비스러웠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선장이 컴퓨터 스크린에 고개를 숙이고 투승코스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근 어장의 해도가 세밀하게 그려진 화면위로 커서를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GPS를 이용한 자동항법장치가 투승코스 설계로까지 발달했으니 콤파스와 자를 사용하여 해도위에 침로를 그려대던 옛날이 무상할 따름이었습니다. 남위 19도 53분,동경 175도 30분 기점에서 275도 코스로 시작되는 되돔방식이었습니다. 오늘은 기어이 엘로우 핀과 빅 아이를 보리라. 나는 어린 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다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