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나주시 세지면 벽산 벽류길 102. 노안면 출신 향토사학자 홍각희씨의 안내로 나주에 있는 여러 정자중 제일 아름답다는 벽류정을 찾았다.
나주의 진산 금성산의 발아래 넓게 펼쳐진 세지면 평야에 솟아오른 작은 동산에 세워진 이 정자가 벽류정(碧流停)란 이름을 얻은 것은 영암군 금정면 국사봉에서 발원하여 이 작은 동산을 끼고 돌아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금천(金川)과 유관하다.
이 정자는 세종때 호조참판을 지낸 조주(趙注)가 말년에 별장으로 쓰던 곳인데, 후사가 없어 그의 외손주인 광산 金씨 運海 에게 물려주자, 그가 인조18년(1640)에 외조부의 높은 학문과 인품을 기리기 위해 전후좌우 3칸인 팔작지붕의 이 정자를 짓고 인근의 선비들을 벗삼아 시문을 즐겼다고 한다. 32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김해부사에 이른,운해(1577-1646)의 호가 벽류다. 푸르게 흐르는 금천의 아름다운 물줄기에서 택한 것이다.
기둥에 나란히 써붙인 주련과 서까래 아래 붙인 현액들의 글을 눈이 어두워 다 읽지 못했다. 그러므로 정자에 깃든 옛 선비들의 고준한 서정과 발자취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현판의 유려한 글씨는 조선 후기 우의정을 지낸 활사(黃史) 민규호(1836-1878) 필체다.
동산을 에워싼 느티나무,느릅나무.팽나무 따위 고목들의 성긴 우듬지로 정자의 품위가 기히 고혹적이다. 숙종(1678),철종(1862) 때 중수를 거친 탓에 단아한 모습이 아직도 정갈하여, 광산 김씨 벽류종정 후손들의 관리가 각별함을 느꼈다. 정자 아래 언덕에 세워진 '가선대부 중추부사 김운해의 기적비'를 훔쳐보며 돌계단을 내려왔다.
온돌방을 중심으로 사방이 넓은 마루여서, 여름이면 내려다 보이는 푸르런 강과 정자 뒤 수천여 평의 대숲에서 일어나는 바람소리로 납량(納凉)의 낙이 끝이 없었으리라. 그래서 늦은 봄이나 여름 한낮에 다시 찾아와야 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앞서갔다. 내 눈엔 나주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정자로서 손색이 없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동산 주변에 어지럽게 들어선 집들과 수초가 무성한 금천의 허접한 모습이었다. 전남 유형문화재 184호 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과 배려가 이곳 역시 전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덩달아 광산 김씨 후손들도 지금은 모두 제 얼굴만 씻고 있는 모양이다.
(오연교의 남도정자기행에서 일부 따옴).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주 금안동-2 (0) | 2022.03.03 |
---|---|
조선시대 3대 명촌,금안동-1 (0) | 2022.03.03 |
신안군 임자도 (0) | 2022.01.11 |
임인년 , 1월의 기도 (0) | 2022.01.09 |
말무덤. (0) | 2022.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