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나주 금안동-3

알라스카김 2022. 3. 3. 11:54

 마을 안으로 접어들자 평지인데도 곳곳에 대숲이 바람에 우수수 울었다. 홍 선생(이제 호칭을 바꾸어야 겠다, 시집의 약력란에 한국문인협회 나부지부장이란 직함이 있었다)은 그도 대숲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먼 옛날 인가 외엔 죄 대나무밭이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양반들이 살던 선비촌이었으니,구한말 영산강 앙암바위 구비의

새끼내처럼 노비에서 풀려난 백성들이 농사릏 지을 水畓은 필요가 없었으리라 유추해 본다.

 

 마을 골목이 기와를 얹은 정겨운 토담들 일색이다. 그것을 두고, 홍 선생은 금안동 복원사업의 초대위전장이었던 자신의 작품이라고 한다.

 

 저수지 둔덕이 보이는 마을 안쪽 명당에 자리잡은 영사재(永思齋). 홍 선생의 7대조 재실이란다.영세극효하고 봉선은효라 함을 근본으로 재호를 영사재라, 후손들이 기념석을  세운 것은 2004년 갑신 9월이라 적혔다.

 홍 선생의 본관은 경북 안동의 풍산 홍씨로서, 사도세자의 정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와 그러므로 정조와 인연이 닿는다고 했다.  조선시대 3대 명촌이었다는 연유가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마을 아래로 내려오니, 토담길 사이로 금안동에 입촌한 풍산 홍씨 9대조를 모신 고옥이 나오고 그 마당에 서륜당이란 기념석이 보였다. . 그의 시조 할아버지는 1242년(고려 고종 29년) 문과에 장원 후 국학직학(國學直學)에 이르렀다는 설명이다. 그때 다리가 짧아 키가 낮은 웬 노인이 나타나 선생에게 불쑥 하대를 했다. 선생은 그의 장형과 임박한 문중시제를 의논할 요량으로 나를 예까지 이끈 것이었다.. 

 

 지금껏 조선의 반상제도가 살아 있다면 선생은 가히 명문거족(?)의 후손인 셈이다.  아무려나 뿌리깊은 나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고옥을 벗어나 대로변으로 나가는 길목에 고당터(과거에 급제한 자의 방을 붙이던 곳)란 표지판이 보였다.

 

조선시대 3대 명촌의 어원이 거의 다 드러난 셈이다. 이제 그 말의 실체를 확인하는 순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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