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아버지의 바다. 2021.11 출간) 출판 기념회를 열겠노라 풍류당에서 순천으로 나를 불렀다. 코로나 방역으로 차일피일 하다, 6개월 만에 갖는 모임인 셈이다. 찾아간 곳은 순천시 오금동의 한옥 고택. 사진 정면은 고택의 사랑채다. 풍류당의 고문이신 정형남 선생님이 초서로 쓴 '風類山房' 이란 현판이 걸렸다.
일찍 모인 사람들끼리 먼저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김칠선 회장은 사시사철 캡을 머리에 얹고 다니고, 송은일 교수는 일년 사이 백발이 더 무성해졌다. 송교수가 대뜸 고택산방의 자리가 자궁(子宮) 터란다. 자궁은 포란형과 유사한 비유로 들린다. 그는 이미 문화.역사나 풍수지리에도 일가견을 갖춘 풍류객이었다. 밝게 웃는 선준규 시인의 왼쪽에 앉은 문창원씨는 영락없는 청렴강인한 조선시대 선비의 면모다.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와 근 10년 ,고택을 손수 돌보며 가꾸고 있다니 말이다.
손님들의 고택체험장인 방이 3칸이다. 이 고택은 임진왜란 때 호남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문창원씨의 선조 문이새가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땅과 건물이란다. 퇴계 이황의 문하였던 문이새는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운명을 위해 목숨껏 싸운 의인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인연으로 하사받은 고택 주변의 넓은 땅을 그때 해룡성이라 불렀다 한다.
고택을 감싸고 있는 동산을 걸어 넘으니, 순천만이 보이고 넓은 낙지뽁음 식당이 나왔다.
식탁은 자연스럽게 회의실 모드로 바뀌었고, 모두 진심어린 축하인사를 내게 건넸다. 김 회장의 생일 축하연까지 더했으니 , 사람들도 시간도 모두 아름다운 풍류당이었다.
목포의 최기종 시인은 서울서 동인시집 포엠만경의 출판행사를 마치고 저녁 무렵 순천에 기차로 달려왔다. 그의 시 '더디 오는 너'가 그래서 더욱 좋았다.
대부분 밤에 여수로 되돌아 갈 형편이어서, 풍류산방에서의 2차 피로연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고문이신 정형남 샘이 좌장이어서 언제나 과음을 삼갔는데, 이 날 샘이 빠진 틈을 타 멋모르고 혼자 바지에 오줌을 지리도록 대취했던 것 같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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